1922년 가을 영국의 고고학자 울리(Sir Leonard Woolley)가 우르 왕의 묘를 발굴하였다. 울리는 발굴 현장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한쪽 끝에는 목관의 잔재 위에 왕비의 시신이 누워 있었고, 그녀의 손 곁에는 황금 잔이 놓여 있었다. 상체는 금과 은, 청금석, 홍옥수, 마노, 옥수 등으로 만든 상당량의 구슬 속에 묻혀 있었다. …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로테스크 하다고 할 정도로 높인 가발이었다.” * 무덤 안에서 보물만 나온 것은 아니다.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모자이크가 나왔다. 모자이크는 아스팔트를 바른 목판에 진주와 청금석을 박아 만들었다. 이 모자이크의 용도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악기 보관함으로 추측한다. 모자이크 맨 위 장면은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왕인듯한데 테두리 선 위로 넘어가도록 크게 그려졌다. 오른쪽 끝에는 하프 연주자와 가수가 그려져 있다. 아래쪽에는 선물을 가져오는 농부와 종들이 그려져 있다. 이미 그 당시 노새는 물론 염소와 양 같은 가축을 길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모자이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네 마리의 노새가 전차를 끄는 장면이 있다. **
발굴한 것은 무덤만이 아니었다. 기원전 2100년경 건설된 지구라트(Ziggurat)를 발굴하였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 가장 완벽하다. 우르 제3왕조의 왕 우르-남무(Ur-Nammu)가 도시의 수호신 난나를 모시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지구라트는 가로 62m 세로 43m의 거대한 건물이다. 현재는 기단부만 남아 있는데 이 거대한 기단 위에 신전을 지었다.
우르는 신전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가 발달하였는데 관개 시설을 갖춘 농경지가 있었고, 금속 가공 기술, 최초의 설형문자, 발달한 수학, 탄탄한 행정 및 사법 제도가 있었다. 우르에 항구도 있었는데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마간(현재의 오만)과 멜루하(현재의 인도)까지 무역을 했다는 비문이 발견되었다. 우르에서 경제에 관련된 수만 장의 토판문서가 출토되었는데 계약자들의 이름과 물건, 내용이 낱낱이 기록되었다.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일 년에 2만 8천 마리의 소와 35만 마리의 양을 속국으로부터 세금으로 받았다. 또한, 들에서 노동하는 일꾼들의 수와 그들이 노동한 양과 월급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 우르는 한 마디로 어마어마한 제국의 대도시였다. 그래서 우르 3 왕조는 ‘수메르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은 왜 이런 대도시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갔을까? 사회학자라면 셈족 계열인 아카드 왕국이 무너지고 수메르족인 우르 왕조가 세워지면서 셈족인 아브라함이 일종의 차별대우를 받아서 우르를 떠나려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정말 아브라함은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 명령이니까 무조건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까? 아브라함의 신앙이 그만큼 대단하였을까?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아브라함이다. 이건 단순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문제가 아니다. 아브라함은 직업을 바꾸어야 했다. 우르에 살 때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아브라함은 75세까지 우르에서 일했다. 그는 그 일에 전문가였다. 그는 대도시에서 제법 잘 나가는 수공업자였다. 그런 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떠날 때는 양과 소를 목축하는 목동으로 변신하였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나일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거대한 관계시설을 통해 대규모 농업을 하면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농업은 발달하였고, 도시는 건설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저곳 움직여야 하는 목축업은 그리 환영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목동은 야생동물이나 도적과 싸워야 하며, 때로 돌을 베개 삼아 맨땅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목동은 도시 문명과 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이제 그는 도시 안의 사람이 아니라 도시 밖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아브라함이 안락하고 편안한 대도시 우르를 떠나 사람도 없는 황량하고 험악한 들판을 헤매며 목축업을 하려고 할 때는 뭔가 깊은 생각과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브라함도 인간적인 결단을 하였을 것이다. 히브리 구약학자인 요람 하조니(Yoram Hazony)의 ‘구약성서로 철학 하기’에서 이 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을 잠시 인용해 보자.
“농부적인 생활방식에서 자라나오는 궁극적 열매는 도시다. 가인과 연결된 농경 생활의 논리적 종착점은 부와 권력의 축적물인 도시다.”
“유목민들은 문명을 밖에서 바라본다. 그들은 산에 서서 도시와 국가가 하는 일을 내려다보며, 광야를 통한 자신만의 독자적 길을 계획한다. 도시 생활의 화려함과 거짓말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그 거짓말을 믿고 매일 힘들게 들에서 노동하는 농부들의 짐승 같은 삶은 더욱 그렇다.” ****
아브라함은 도시 문명의 허구를 보지 않았을까? 부와 권세와 명예와 지식을 다 가졌지만, 솔로몬이 고백한 것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부와 권세를 가지고도 삶의 회의와 갈등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여리고의 삭개오가 가졌던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과감히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의 방식(Life-Style)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도시의 가치, 세속적 가치를 다 버리기로 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는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구절이다. 이기적인 욕심과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자 높은 건물을 짓는 도시 문명은 생존경쟁의 치열한 싸움터다. 전쟁 같은 삶을 살던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광야로 나아간다. 지나가는 손님을 보면 기꺼이 소와 양을 잡고 그의 발을 씻겨주며 살고 싶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전쟁에 패배하여 조카 롯이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하였다. 롯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백성까지 구하였다. 소돔 왕은 너무 고마워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얻은 모든 전리품을 다 가져가라고 제안하지만, 아브라함은 깨끗이 거절하였다. 돈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조카 롯과 재산 분쟁이 있을 때도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다 양보한다. 그의 부인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이 무덤으로 쓸 막벨라 굴을 무료로 준다고 했을 때 기어코 값을 주고 샀다. 그는 이기적인 도시인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때로 자기 한 몸 살아보자고 부인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축복과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대도시 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은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그것은 세속의 가치관을 버린 것이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바꾼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으로 알려진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는 유명인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스위스 산골짜기 작은 산골 마을로 숨어 들어갔다. 그는 자기 이름을 날리고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마케팅 기법을 쓰지 않았다. 기금 마련을 위한 편지나 광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성공을 지향하는 현대의 광고기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메시지는 성경적이지만, 비성경적인 방법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현대 교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은 그가 자기 은사를 낭비한다고 비난했다. 수천 명을 모아서 강연할 수 있는 데 왜 산속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하였다.
쉐퍼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데려다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현대 문명의 허구를 연구하였다. 그는 자기 자녀의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자녀가 로잔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 친구들이 영적인 질문을 하면 “너 우리 아빠 한번 만나봐야겠다.” 하며 아버지에게 데려왔다. 그것은 자녀들도 쉐퍼 부부의 삶을 인정하였다는 뜻이다. 그들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아닌 진정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처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쉐퍼의 집은 찾아오면 너무 외지기에 최소 하룻밤은 묵어야 했다. ***** 쉐퍼는 그들과 함께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이야기하였다. 대학생들은 염소수염에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쉐퍼의 이야기에 감동하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대학생들은 쉐퍼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오두막은 라브리 공동체가 되고 수많은 대학생과 지성인의 삶을 바꾸는 본부가 되었다. 그만큼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성공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영적으로 삭막한 지 보여준다.
불신자도 고민한다. 인생이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가치, 변하지 않는 참된 가치는 없는가? 우르에 살았던 아브라함이나 여리고의 삭개오나, 현대 도시인이나 모두의 고민이다. 창세기는 바로 그러한 고민에 답을 주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벧전3:15)
그리스도인은 도시의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주(註)
* 클라시커 50 고고학 / 볼프강 코른 지음 / 장혜경 옮김 / 해냄 / 2004년 / 157쪽
**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 쎄람 지음 / 강미경 옮김 / 랜덤 하우스 / 2008년 / 265쪽
*** 아카드 왕국의 멸망과 우르 제3 왕조 / 배철현 씀 / 말씀터 22호 / 한님성서연구소 / 2002년 / 9쪽 이하
**** 구약성서로 철학하기 / 요람 하조니 지음 / 김구원 옮김 / 홍성사 / 2016년 / 141,142쪽
***** 완전한 진리 / 낸시 피어시 지음 / 홍병룡 옮김 / 복있는 사람 / 2012년 / 694,695쪽
7. 초기 인류는 천재였다.
6. Pick Me Up
5. 사람의 가치
4. 아름다움은 앎이다.
3. 데카르트의 실수
1. 금욕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