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3장
다윗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세 명의 위대한 용사가 있었다. 다그몬 출신 요셉 밧세벳이란 사람이 첫 번째 용사다. 그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그는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고, 학모니 사람 야소브암이라고 한다. (삼하23:8, 역대상11:11) 만일 야소브암이라고 하면 그는 고라 자손으로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합류한 사람이다. (역대상12:1,6) 그가 세운 공적도 매우 짧게 기록하였다. 삼하 23:8에서는 단번에 800명을 쳐 죽였다고 하고, 역대상11:11에서는 장창을 휘둘러 300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는 세 용사 중 우두머리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마치 삼손과도 같은 영웅이다. 그러나 너무나 짤막하게 그것도 사무엘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겨우 한 줄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용사도 비슷하다. 그는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문을 12달로 나누었는데 도대는 그중 두 번째 달을 책임지는 우두머리였다. 그렇다면 엘르아살은 매우 유력한 집안의 아들이다. 그는 팔에 힘이 빠지고 칼 잡은 손이 굳어져 풀리지 않을 때까지 블레셋 사람을 쳐 죽였다.
세 번째 용사는 삼마다. 그는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이다. 그는 마치 장판교 위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향하여 호령하던 장비와 같다.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서워 다 도망쳤지만, 삼마 홀로 녹두밭에 버티고 서서 블레셋 사람을 쳐 죽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위의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쓴다면 아마 엄청난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뛰어난 영웅이고,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큰 공을 세운 장수들이다. 그런데도 달랑 한 줄씩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이 세 용사는 전적이 조금 기록되었으니 다행이다. 이 세 용사 뒤에 37명의 용사를 기록하였는데 겨우 이름만 적었을 뿐이다. 그것도 사무엘하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못해 적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면서 인간적으로 이들이 얼마나 아쉬웠을까 생각하였다. 자기들이 세운 공적과 위치를 생각하면 절대 이렇게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이름이 들어나지 않았음에 불평하였을까?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의 본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든 안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은 자기의 주군인 다윗의 이름이 드러나고 눂여진다면 자신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사무엘하 23장에 기록되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다. 블레셋은 베들레헴에 진을 치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진을 쳤다. 한여름 모두 지치고 피곤하였는데 다윗은 혼잣말을 하였다. “고향 땅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다윗의 그 소리를 듣고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에 가서 우물물을 떠 온다. 그들은 다윗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하나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다윗을 사랑하였다.
다윗의 왕국은 다윗 혼자 잘 나서 만든 것이 아니다. 다윗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수많은 부하 장수들의 헌신이 다윗 왕국을 세웠다. 아마도 다윗이 탁월한 리더십과 훌륭한 인품으로 부하들을 이끌었기에 이런 팀워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은 다윗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아니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그런데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이 얼마나 될까?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였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