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광 여행
한국 여행객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뉴질랜드 남섬을 가이드하였던 민웅기 씨는 그것을 잠광이라고 표현하였다. 버스 여행 기간 그저 잠만 자는 것이다. 버스를 타기만 하면,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잠을 자다가 관광 포인트에 도착하면, 후다닥 뛰어내려 인증샸을 찍는 여행이다. 그것이 한국 단체 관광객의 특징이라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킬로를 버스로 달리는데, 그저 그런 풍경만 계속되는데,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25년 전 필리핀 보라카이를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보라카이에서는 한국 관광객을 거의 찾을 수 없었고 순수한 자연 속에 유유자적하는 서양인들만 가득하였다. 그들은 야자수 그늘에서 온종일 책을 읽거나 산책하거나 일광욕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기저기 구경 하며 기념 사진을 찍지 않는 서양인들을 보면서 참 이상하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무조건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여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여행을 시작하여 퀸스타운으로 가는 코스를 취한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500킬로 떨어진 퀸스타운에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 늦게 도착하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버스로 달리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가이드는 그 길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나 정보를 전달해주지만, 여행객들은 이내 잠에 빠져들고 만다. 관광 포인트에서 잠시 머물기는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워낙 멀기에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 그저 점만 찍고 갈 뿐이다.
사실 크라이스트처치는 수년 전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보았고 지금도 그 피해를 복구하는 중이기에 볼 것이 거의 없다. 설령 피해를 다 복구했다 할지라도 솔직히 크라이스트처치는 별것이 없는 도시이다. 그래도 많은 돈을 들여 오는 것이기에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보려는 것이 한국 관광객들의 욕심이다. 내 생각에는 크라이스트처치는 빼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저 퀸스타운에서 여유 있게 며칠간 머물면서 가까운 근처 호수나 밀포드 사운드를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 활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뉴질랜드가 준비한 여러 가지 스포츠나 야외활동들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히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으로 이동하는 데 이틀을 소비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잠광을 버려야 할 때이다.
내가 만일 다시 뉴질랜드를 찾는다면 나는 퀸스타운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며 주변의 풍광을 마음껏 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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