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평소 다산 정약용 선생을 흠모하여 다산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번에 읽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책은 다산의 삶에 숨결을 불어넣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만든 아주 귀한 책이다.
이 책은 성균관대 석좌초빙교수이며 다산 연구소 이사장이고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이신 박석무 선생께서 쓰신 책이다.
그도 또한 유신정권 시절 감옥생활을 하면서 다산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유배당한 다산의 심정으로 다산을 보았다.
이 책은 다산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으로 다산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산은 명문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려서 성균관에 수석으로 급제하여 초계문신으로 성공가도의 과정을 밟아간다.
그러나 사색당파 싸움의 와중에 천주교라는 씻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 그의 집안에 떨어짐으로 가문이 풍비박산되고 다산 역시도 언제 돌아올는지 모르는 유배 길에 오르게 된다.
한마디로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면, 대개 세상을 한탄하며 술로 일생을 낭비하거나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학문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다산은 억울한 유배생활 속에서도 누구를 탓하거나 억울함 속에 분노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주어진 절박한 운명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더 굳건한 마음으로 학문에 정진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며 18년 유배생활 동안 약 500여 권의 책을 쓴다.
자기 자녀들에게도 역적 집안의 자녀들일수록 더욱더 학문에 정진하기를 여러 차례 간곡히 권면한다.
다산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고 굳건한 정신력으로 배움에 정진하여 마침내 실학사상의 거두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다산에 대하여 조선왕조는 망하기 직전 그에게 문도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헌대부 규장각 제학이라는 벼슬을 중지한다.
비록 그가 세상을 떠난지 74년 만에 일이긴 하지만, 그를 유배 보낸 조선왕조가 그를 인정하여 조선 최고의 학자로 복권하고 시호를 내린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삶의 어려운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좌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은 우리에게 크나큰 본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