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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13. 2015

노상추의 일기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조선 양반 사회

조선 후기 노상추(1746-1829)라는 무인이 있다. 

정조 4년(1780년) 36살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1784년 39살 나이에 선전관으로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인인 노상추가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쓴 일기 때문이다. 

그의 일기는 무려 68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이 노상추의 일기를 연구한 문숙자 박사(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는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란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의 내용에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승자들의 역사이고, 지배자들의 역사이다. 

그리고 거시적인 역사이다. 

그러기에 세밀한 부분, 특별히 당시 일반 백성들이나 하급 관리들의 삶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다. 

노상추의 일기는 조선 후기 개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이해하는 좋은 열쇠가 된다.


노상추의 일기 중에 당시 유교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남성 위주, 정확하게 말하면 '양반 남성 위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안강 노씨 집안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족보와 호적이 있다.

족보와 호족으로 살펴보는 노씨 집안의 내력과 노씨의 일기 속의 내력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족보에는 노상추의 아들 2명과 딸 2명이 기록되어 있다.  

호적에는 아들 3명만 기록되었다. 

반면에 노상추의 일기에는 아들이 6명 딸이 5명, 첩이 1명이 기록되었다. 

일기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족보와 호적에는 없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장성하여 혼인 이전에 죽으면 정식 기록에 남지 않았다. 

첩의 자식은 기록하지 않았다. 

기생의 자식도 기록하지 않았다. 

딸들도 웬만하면 기록에 남지 않았다. 

만일 일기가 없었다면 한 가족의 역사에서 2/3의 구성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노상추 집안의 문제만은 아니다. 

당시 양반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이다. 


조선 사회는 철저하게 남성 위주, 그것도 양반 남성 위주의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양반 여성을 포함하여 첩과 그의 자식들, 평민들, 농민들, 하인들 모두는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양반 남성은 그 사회에 몇 퍼센트나 되었을까?

조선 사회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양반 남성은 10%가 되지 않았으리라 추정한다.


그들은 성리학을 공부한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아무런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호의호식하였다.

여성들에게는 정절과 수절을 가르치면서 자신들은 처첩과 기생을 두고 살았다. 

호적에도 올리지 못할 아이들을 무수히 양산하였던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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