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셋째 날 새벽 5시에 갠지스 강에 나갔다.
밤새도록 떠들던 모스크의 마이크 소리, 시끄러운 폭죽 소리도 사라진 이 시간이야말로 유일한 침묵의 순간인 것 같다.
거리는 오직 신문 배달부들만 배달할 신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는 이미 철수가 우리를 위하여 보트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철수는 인도인으로서 수년 전 한비야 씨가 방문했을 때 그에게 지어준 이름이란다.
보통 보트 타는 비용으로 50루피를 부르고 깎아서 25루피로 하는데 한비야 씨는 전혀 깎지 아니하고 배를 탄 뒤에, 나중에는 200루피라는 거금을 팁으로 주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비야 씨는 그녀의 책에 철수를 소개함으로서 한국인들이 찾기 시작하여, 김혜자 씨, 가수 비, 무한도전팀 등 유명인들을 많이 태웠다고 한다.
처음 한비야 씨를 태울 때만도 영어로 가이드를 했는데 한비야 씨를 계기로 한국말도 배워서 현재는 5개 국어(영어, 한국어, 일어, 힌디어, 뱅갈어)를 구사한다.
인도 현지에서 배운 한국어가 얼마나 유창한지 이제는 모두 한국에 다녀왔느냐고 질문한다.
지금까지 다른 인도인들이 그러하듯이 철수도 아무런 경제 개념 없이 그날 벌어서 그날 다 써버리는 삶을 살았다.
사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인의 무위 자적하는 삶을 따라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 보았자 취업도 어렵고, 장래에 대한 소망도 보이지 않고, 결국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도인들을 닮아가는 것이다.
유유자적하는 삶을 탓할 순 없지만, 국가관이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장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쾌락주의뿐이 아닐까 염려가 된다.
철수도 그렇게 내일에 대한 계획도 없이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는 소망 없는 청년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장래를 생각하고 계획하며 가계부를 기록하고 있다.
난 그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사람을 만날 때 오 년 후 십 년 후에 대해서 아무런 궁금증을 주지 않는 사람은 더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현재 아무리 훌륭하고 잘나간다 할지라도 그는 이미 죽음에 이르는 중병에 걸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한국 별명을 가진 철수가 바로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국 이름을 버리고 인도식 이름을 가지고 인도인들 처럼 살아가려는 한국 청년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장래가 기대되는 청년, 지금보다 오 년 후, 십 년 후가 훨씬 기대되는 청년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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