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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4. 2016

나만의 여행을 배우다.

"가치 있는 여행이 쉬우리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알랭 드 보통) 


삶이 답답하고 일상이 지루할 때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더위에 지치고 몸이 축 늘어질 때 어디론가 떠나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고 싶어 한다. 

그래도 떠나기가 쉽지 않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용기가 문제다. 

'그래! 일단 움직여보자. 

비록 여행하고 돌아오면 더 피곤할지 모르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에서 떠나보자!'

사람들은 이 여름 도시를 떠난다. 

쉼을 얻고자 낭만을 찾고자 여행을 떠난다. 


예수님 당시에는 낭만 여행이나 휴가 여행이 없었다. 

그때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사도 바울은 여행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6-27)


무엇보다 강도의 위험이 가장 컸다. 

당시 사람들은 가난에 지쳐 있었다. 

강도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땅과 집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도둑이 되었다. 

그들은 떼를 이루어 지나가는 사람을 위협하고 물건을 강탈하였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호6:9)


이들은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강도이지만, 합법적인 강도도 있었다. 

도시든 시골이든 여행자가 가는 곳마다 악명 높은 세금 징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만불손하였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여행자들은 관세와 통행세와 인두세를 바쳐야 했다. 

세금징수원은 고무줄 같은 규칙으로 자기 기분 따라 세금을 매겼다. 

로마의 압제를 받는 유대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을 내야 했다. 

그야말로 날강도였다. 


여행자들은 강도와 세금 징수원을 피하려고 밤에 주로 여행하였다. 

그때는 지도도 없었기에 안내자가 필요하였다. 

안내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방향을 잡았다. 

밤길을 걸을 때 특별히 야생동물을 조심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사자나 곰이나 늑대에게 공격당하기 십상이었다. 


일반적으로 걸어서 여행하였으며, 때로 노새나 나귀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처럼 마차를 타고 호화롭게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렇지만, 그 길은 몹시 험하여 마차가 갈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었다. 

1852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지리연구가였던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은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기록하였다. 

이 도로는 헤브론과 예루살렘을 잇는 도로였다. 그러나 이곳으로는 바퀴들이 결코 지나간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변의 언덕들이 워낙 경사가 급하고 가팔랐고 도로의 표면은 두꺼운 층의 자갈로 온통 뒤덮여 있어서 인공 도로를 까는 수고 없이는 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교통수단을 쓴다는 것은 어려웠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진정 순례자의 길이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해야겠다는 영적 간절함이 있는 사람만이 여행을 떠났다. 

물론 축제 때는 거대한 무리를 지어서 가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적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지금처럼 편안한 운송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몇 날 며칠이고 걸어서 가는 길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여행하는 사람이 가지고 간 음식은 주로 볶은 곡식과 말린 무화과나 올리브 대추야자 등이었다. 

때로 보리 떡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으면서 볶은 곡식을 입에 털어 넣고 노래하며 걸었다. 

좋은 안내자는 더위에 지치고 거친 곡식으로 목이 멘 여행자를 맑은 샘물로 안내하였다. 


여행에 큰 비용이 들고, 많은 불편과 위험이 동반한다. 

그런데도 여행을 떠날 이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소망에 있다. 

경건한 유대인은 유월절을 비롯하여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다. 

성소를 찾는 것은 유대인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중세의 영성 작가들은 viator(여행자)라는 라틴어를 신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신앙은 여행이다. 

고대 유대인이 하나님의 성소를 찾듯이 우리도 일생 다하도록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다윗은 목자와 함께 길을 가는 양으로 자신을 비유하였다.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정하지 않고 그저 먹으니 살고, 사니 먹는다고 말한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다. 

인생이 여행인 줄 모르고 시간을 낭비하다가 죽음이 임박해서야 헛되고 헛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이 나그넷길 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순례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쉬고 노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위험과 난관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소망을 가지고 푯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유대인들은 시간 단위로 거리를 재는 습관이 있다. 

그들은 “사흘 길, 하룻길, 칠 일 길” 이란 말을 썼다. 

우리 인생길이 얼마 남았는가?

혹시 지금까지 방황하며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헤맸다면, 이제라도 방향을 바로 정해야 한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바보인가? 아니면 여행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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