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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8. 2016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공항으로 가는 길, 심정이 미묘하다. 오늘 드디어 큰 딸 성애의 신랑이 될 피터와 그의 부모가 한국에 온다. 29년 동안 사랑으로 키운 딸을 데려갈 시부모는 어떤 분일까? 딸을 보내는 아빠의 심정을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서운함과 기쁨, 아쉬움과 안도감, 허전함과 뿌듯함. 온갖 감정이 가슴 속에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성애는 피터가 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차 안에서 종달새처럼 재잘거린다. 아직 자녀를 낳아보지 못했으니, 아니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무언지 모르는 딸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른다.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고 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중국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고 들어오는 피터는 효자인듯하다. 어릴 적 키워주신 그 사랑에 고마워 중국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입국한다. 중국 우한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외할아버지는 94세이다. 피터는 매일같이 외할아버지를 샤워시키고,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워주었다. 이모가 있어서 외할아버지를 돌봐주고 있지만, 피터는 중국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할아버지를 간호하고 싶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다. 피터 부모는 멀리 캐나다 국경의 작은 도시 Sarnia에서 온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하였다. 마침내 피터가 나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함께 어긋맞고 안는데 마음속의 모든 잡념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넌 내 아들이다.'

키 185cm에 적당한 몸매를 가진 피터는 핸섬하고 스마트하였다. 나보고 젊어 보인다고 계속 칭찬을 하는 말에 내 기분이 풀어졌는지 모르지만,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가족 중에 영어 실력이 제일 떨어지는 나는 마음속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놓지 못하여 답답했지만, 마음으로 표정으로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하였다.


피터는 34살 젊은 나이에 CIBC 밴쿠버 지점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중국 우한에서 태어나 8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간 이민 1세대다. 피터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고, 어머니는 중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겸손하고 유쾌한 피터 부모는 마치 십년지기 친구 같다. 서울로 들어오는 차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서로 안부를 묻느라 시끌벅적하였다. 집사람과 둘째 딸 주애는 작년 성탄절, 캐나다에 가서 피터 부모를 만났기에 할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운전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드디어 성애가 결혼하는구나. 경제적 능력이 별로 없는 아빠를 잘 알기에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4년 장학금을 받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해 생활비를 벌던 딸이다. 그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대학을 3년 반 만에 졸업하고 캐나다 은행(CIBC)에 입사하여 피터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니 대견하다. 충분한 후원을 못 하였지만, 언제나 밝은 미소로 아빠의 마음에 기쁨을 주던 딸이다.

이번 결혼식에도 어떻게 해서든 최소 비용으로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때로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는 캐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25만 원짜리를 사 왔다. 구두는 동대문 시장을 온종일 돌아다니다 결국 만 오천 원짜리 인조가죽 구두를 샀다. 결혼식 때 머리 손질과 화장에 돈 들일 필요 없다고 자기가 화장하고 머리 손질하겠다고 한다. 결혼식 후 입을 원피스도 동대문 시장에서 깎고 깎아 9만 5천 원에 샀다. 아빠가 능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호화롭게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제대로 된 메이커 옷을 사주어야 했는데 안타까움이 크다.그래도 언제나 아빠 손을 꼭 잡고 다정한 연인처럼 다니는 성애 때문에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성애를 따라 동대문 밀레오레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토요일(8월 20일)이면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결혼한다. 모든 허례허식과 거품을 쏙 뺀 그야말로 심플한 결혼식이다. 비록 단출한 결혼식이지만, 마음 만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부자인 딸이다. 특별히 피터를 보니 그동안 했던 이런저런 염려가 다 사라진다. 이제 아빠를 대신해서 능력 있고 핸섬하고 다정다감한 피터가 성애를 책임지고 행복하게 하리라 믿는다.

성애야 피터야 부디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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