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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5. 2016

집단지성의 힘

1.

김용은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5살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가 9살 때 흑인 인권 운동의 영웅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였다. 소년 김용은 그때부터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하버드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를 취득한 후 28살 나이에 친구 폴 파머와 함께 의료 봉사기구를 만들어 아이티에서 결핵 퇴치 운동을 벌였다. 그의 헌신적 봉사활동에 감동한 세계보건기구(WHO)는 2006년 그를 AIDS 국장으로 임명하였다. 2009년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에 속하는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이 되고, 2012년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다.


그는 얼마 전 연세대에서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다. 강연 중 그는 다트머스 대학의 턱스 스쿨(MBA)을 소개하였다. 턱스 스쿨은 재학생에게 팀 활동을 25번 제공한다. 학생들은 팀을 이루어 토론하고 문제를 풀어간다. 팀 활동에는 반드시 팀 닥터가 있는데, 나이 많은 학생이나 교수가 팀 닥터 역할을 하였다. 팀 닥터는 팀 활동을 하는 학생을 평가 한다. 경청하는 자세, 다른 팀원을 대하는 태도, 토론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평가한다. 학생들은 25번의 팀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예절과 문화를 배우고, 팀 프로젝트를 감당할 준비를 하게 된다. 턱스 스쿨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취업률을 보이는데 이는 기업에서 그들의 팀 활동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2.

18세기 조선의 실학자들은 이미 팀 활동을 하였다. 조선은 병자, 정묘 양란을 거치면서 청나라의 신하국가가 되었다. 조선은 만주 여진족을 오랑캐라 여기고 멸시하였는데 그들이 조선을 침공하여 조공을 바치라고 했을 때 조선은 치욕스럽게 생각하였다. 효종은 청나라 오랑캐를 정벌하자는 취지로 북벌을 주장한다. 조선을 욕보인 청을 배격하고 명나라를 따른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조선은 북벌을 국시로 하는 소중화(명을 따르겠다는 문화 사대주의)에 함몰되었다. 이미 명은 청에 멸망하였지만 조선 유학자들은 명만 따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 연암을 중심으로 북학파가 등장한다. 그들은 중국 사신단으로 청나라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청은 문호를 개방하여 멀리 유럽에서 학자들이 들어오고 문화와 문명은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북경의 서점 거리는 한 마디로 신세계였다. 어마어마한 책이 유통되는 것을 보고 조선의 실학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청나라를 오랑캐라 치부하며 자기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청에게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학파는 청나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하였다. 소중화에 빠져 있던 조선은 청에게 배울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북학파는 사고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배울 것이 없는 상대란 없다!


연암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의 공부방법은 특이하였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연구한 것을 책으로 엮어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돌려 읽었다. 친구들은 그 책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평을 하였다. 책의 여백에 자기 생각을 써주었고, 혹시 참고 될만한 자료가 있으면 그것을 덧붙여주었다. 그들은 돌려 읽기를 통하여 자신의 안목을 수정하고, 자신의 작업을 더욱 더 발전적으로 보완하였다.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부 방법이다. 토론하다 보면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별히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학자들이 더 상처받기 쉬운 법이다. 북학파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머리 숙여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였다.


이를테면 앵무새에 관한 글을 쓴 이서구는 자신의 책을 돌려 읽기를 하였다.

“이서구의 《녹앵무경》은 박제가와 유득공, 이덕무 등의 윤독을 거치는 동안 당초의 분량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마치 정보사냥대회라도 하듯이 앵무새에 관한 고금의 정보들을 경쟁적으로 찾아내서 저술의 부피를 늘이고 체제를 다듬어 나갔다. 또 본문 아래 평을 달아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좌장이었던 박지원이 서문을 얹음으로써 이 책은 한 권의 새로운 지식경영서로 탄생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정민지음, 휴머니스트, 2011년, 65쪽)


3.

영국의 과학자이며 우생학의 창시자인 골턴(Francis Galton)은 여행 중 시골의 가축 품평회를 보았다. 그 행사에는 소의 몸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가 있었다. 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 쪽지에 소의 몸무게를 적어 내었다. 800개의 쪽지가 걷혔는데 그중에 알아볼 수 없는 13장을 제외한 787개의 표에 적힌 무게를 평균 내었더니 1,197파운드였다. 실제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소 전문가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맞혔다. 골턴은 여기서 집단의 지적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달았다.


과거에는 집단의 힘보다는 한 개인의 지성과 능력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모았다. 내 자녀가 남보다 훨씬 뛰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였다. 남들 모르게 고액과외를 시키기도 하고, 남이 공부 안 하는 시간에 더 공부하도록 재촉하였다. 함께 팀을 이루어 공부하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는 변하였다. 소수의 힘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던 사회에서 이제는 집단지성의 힘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등장하였다.


집단 지성을 형성해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팀 활동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음을 깨닫고 열린 마음과 겸손함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경청, 열린 마음, 겸손함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덕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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