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시대를 향하여 질문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년에 개봉한 영화다. 악마 같은 직장 상사 미란다 역에 메릴 스트립이었고,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의 비서 앤디 삭스 역은 앤 해서웨이였다. 성공이 21세기 최고의 가치가 된 상황에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마가 되면 어떤가? 프라다만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꿈꾸고 있을까?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 문제를 문학작품으로 풀어냈다. ‘파우스트’(Faust) 작품 속의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다 섭렵했지만, 진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우울증에 빠진다.
“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그만두었더라면 좋으련만, 신학까지도 열심히 애써 마쳤다.
그 결과로 이렇게 가엾은 바보가 되었구나. ...
그 대신 나는 모든 기쁨을 빼앗겼다. ...
재산도 돈도 없고 세상의 명예나 영화도 갖지 못했다.” (철학까페에서 문학 읽기, 20쪽)
우울증에 빠진 파우스트에게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다가와 유혹한다. 세상의 성공과 순간적인 쾌락을 줄 테니 그의 영혼을 달라는 것이다. 진리만을 추구하는 무료한 삶에 지친 파우스트는 기꺼이 악마와 손을 잡는다. 그 후 파우스트의 화려한 삶, 파란만장한 삶이 작품 속에 길게 묘사한다. 그런데 ‘파우스트’ 작품의 결론은 뜻밖이다. 영혼을 악마에게 빼앗기고 지옥으로 떨어질 줄 알았던 파우스트는 오히려 구원을 받는다. 진리를 추구하던 파우스트가 아니라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던 파우스트가 구원받았다는 결론을 내린 괴테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는 세속화 - 세속적 가치에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내다보고 이 작품을 썼던 것일까?
성리학을 절대 진리로 믿고 따르던 시기에 이단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과거에 응시할 자격도 없는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고독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중국을 네 번이나 다녀오면서 자원이 절대 부족한 조선이 살 길은 오직 통상무역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사치를 금하자는 주장은 성호 이익이나 다산 정약용도 동의하였지만, 박제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졌다. 요즘 말로 말하면 ‘소비가 미덕’임을 강조하였다.
“근검은 오히려 백성이 즐기지 않을 뿐 아니라, 쓸 줄 모르면 만들 줄도 모르는 법이다. 비단을 입지 아니하므로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며, 일그러진 그릇을 마다 않고 쓰니 공장도 도야하는 일이 없게 되어... 인하여 모든 공묘함을 일삼는 기술이 사라졌다.”(조선의 인물 뒤집어 읽기, 175쪽)
성리학의 굳어진 틀을 과감히 뛰어넘은 박제가는 두 세대를 뛰어넘어 소비사회인 현대를 바라보았다.
시대를 내다보고 세속적 가치의 중요함을 역설한 이들은 정말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천재들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정말 2000년 동안 인류가 추구해왔던 절대적 가치는 무용하고, 세속적 가치, 상대적 가치만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해야 옳은가? 정말 프라다만 입는다면, 악마라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