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왜 구약을 남겼을까? 구약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실패했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범죄했는가를 낱낱이 기록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기록할 때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훌륭한 역사를 기록하려고 한다. 할 수 있는 한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기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고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그 반대다.
물론 역대기서는 숨길 것은 적당히 숨기고 드러낼 것은 과감히 확대하여 기록하였다. 다니엘서 역시 다니엘의 약점과 결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게 기록하였다. 유대인은 역대기와 다니엘서를 역사서로 취급하지 않고 아무 성격이 없는 문서 즉 제 문서(諸 文書, Schriften)로 분류하였다. 미사여구로 아름답게 포장한 역사는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이렇게 역사 속에 자기 선조의 잘못과 죄악을 적나라하게 기록하였을까? 그것은 두 번 다시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말자는 뜻이다. 수천 년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적대시하다 결국 망하였는데 이제 두 번 다시 하나님의 법도를 외면하지 말자는 뜻이다.
요즘 새벽마다 사사기를 읽고 짧게 설교하고 있다. 오늘 삿2:1-10의 말씀을 읽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과 맺은 (결혼) 언약식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잊지 않고 신실하게 지키었다. 그러면서 신부인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내용은 단순하다. 물질문명 속에 취하여 사는 이방 민족과 언약을 맺지 말라!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마라! 그것은 영적으로 음란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언약의 내용을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너희는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므로 세속의 가치관을 따라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나라는 약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돌보는 나라, 즉 이리(강자)와 어린 양(약자)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라. 약육강식의 법칙이 아니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적인 나라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세속의 가치를 추구하고, 세속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 삶은 전쟁 같은 삶이다. 죽고 죽이는 삶, 속고 속이는 삶,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삶이다. 할 수 있는 대로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다 차지하는 삶이다. 패자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직 승자만 살아남는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삶의 스타일(lifestyle)이다.
불행한 것은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한 1세대 여호수아도 가고,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언약을 맺었던 2세대도 가고, 3세대가 나타날 때였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2:10)
설마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몰랐을까?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다 보고 자란 세대다. 억지로 멱살 잡혀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던 세대들이다. 아무런 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흉내를 내었지만, 아버지 세대마저 돌아가시고 나자 그들은 본색을 드러내었다.
“하나님 나! 몰라! 하나님이 누구야? 나 몰라!”
“내 인생은 나의 것이야 내 마음대로 살 거야!”
“하나님의 법칙과 말씀은 정말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현실의 흐름을 읽을 줄 몰라.”
“그 말씀대로 살다가는 우리 다 망할 거야.”
“나 몰라 하나님이 누구야!”
그렇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리고 사사기는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 죄악 가운데 빠져들었는가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죄악 가운데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이야기가 사사기 이야기다. 사사기 역사는 사사시대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망할 때까지 그 이야기는 지리하게 반복된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다. 살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나라가 망하고 깨어지더라도 이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 더는 방황하지 말자! 수천 년의 역사가 주는 교훈을 절대 잊지 말자.
개신교는 이제 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니 이제 내년으로 딱 500년이 된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00년을 겨우 넘어섰다. 이런 짧은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경험한 것은 너무나 일천하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오직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는 줄 알고 목숨 걸고 신앙생활 하던 1세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 1세대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거두며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던 2세대 역시 가고 있다. 우리는 바로 2세대 끝 무렵에 서 있는 것 같다. 우리까지는 그래도 어영부영 여호와 신앙을 지키며 따라왔다. 그렇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어찌 될 것인가? 사사기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누구야? 나 몰라! 부모님이 신앙생활 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말하지 않을까? 수천 년을 통하여 넘어지고 자빠졌던 경험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긴 구약의 뜻을 제대로 되새기지 않으면 우리 자녀 세대, 우리 민족은 깊은 흑암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한 세대가 가고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세대가 나오고 있다.
유대인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보김에서 울었다. 그 눈물이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형식적 울음이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울음이라도 좋다. 오늘 우리는 아예 울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