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Oct 31. 2016

책임질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나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1945년 10월 1일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열었다. 그 무렵 칼 야스퍼스는 '죄책론'이란 강연을 했다.  후일 1948년 이 강연은 '우리에게 죄가 있는가? - 독일의 자기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잡지 '유럽' 제8호에 실렸다.  야스퍼스는 전쟁의 죄를 4가지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1. 형사상의 죄 

이것은 전쟁 범죄 - 국제법 위반을 의미한다.  히틀러는 이미 자신이 처벌받을 줄 알고 수치를 당하기 전에 자살하여 죽었지만, 나치 간부들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2. 정치상의 죄

근대 국가에서는 누구나 정치적 행동을 한다. 일반 국민은 선거 때 투표를 통하여 정치적 행동을 하고 정치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따라 더욱 분명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선전과 선동을 통하여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선거의 승자는 자기 구미에 맞게 판을 짜고 나라를 이끌어간다. 야스퍼스는 이런 정치적 행동에 따른 책임을 죄와 연결하여 해석한다. 나라를 바로 이끌지 못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죄)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상의 죄다. 


3. 도덕상의 죄

이것은 법률상으로는 무죄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책임이 있는 경우다. 가령 자신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든지, 분명 잘못인 줄 알면서도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피해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든 아니면 묵시적 동조이든 침묵하고 행동하지 않은 죄다. 후일 문제가 터졌을 때 '난 아무런 이익을 취하지 않았으니 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양 뒤늦게 비판의 대열에 서서 큰 소리로 떠든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4. 형이상학적 죄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은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친구와 가족은 죽었는데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비록 자신도 나치의 피해자이지만, 독일이라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죄스러웠다. 야스퍼스는 이것을 형이상학적인 책임(죄)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일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죄를 씻기 위하여 다시는 이런 죄악 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지고 감시 감독할 의무가 생겼다. 그것이 자신보다 앞서 고난과 아픔을 겪었던 모든 피해자를 위하는 길이다.  


나는 야스퍼스의 4가지 책임(죄)을 나름대로 해석해보았다. 사실 야스퍼스는 전형적인 독일의 지식인으로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죄가 있는가?' 물으면서 은근슬쩍 독일의 우월성을 드러내었다. 전쟁 재판은 승전국이 패전국을 심판하는 것이다. 승전국이라 해서 반드시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죄가 있지만, 승리하였기에 패전국을 재판한다. 반대로 독일이 승전하였다면, 연합국을 심판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만 죄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정치적 심판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독일 국민의 긍지와 사명을 되찾자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야스퍼스의 허점이 있다. 그는 나치즘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왜 나치즘이 생겨났으며 독일이 어떤 의도로 나치즘에 동조했는지 따져 묻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가지는 병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원인을 자세히 따지지 않고 단지 전범 재판을 순순히 받아들임으로 독일의 긍지와 사명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잘 생각하면 이는 언어도단이다. 그래도 독일의 경우는 좀 낫다. 일본의 전후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일본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의 경우>  


 일본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46년 5월 도쿄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가고 있을 때 일본 최대 관심사는 '천황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였다.  이탈리아는 말할 것 없고 독일도 항복하였지만, 일본은 전쟁을 계속하였다.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항복의 조건으로 천황만은 보호하고 싶었다. 전쟁에 패배한 이상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천황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잘해야 퇴위거나 아니면 사형당할 처지였다.  

천황은 일본이 선전하는 것처럼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니었으며 평화를 애호하는 입헌 군주도 아니었다. 그는 전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시하였고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분명 항복해야 할 시점인데 천황은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머뭇거렸다. 그사이 많은 도시는 폭격을 당했고 마침내 원자폭탄으로 수백만의 사람이 죽었다.  그때야 비로소 천황은 항복을 선언하였다. 천황의 항복선언은 일본 국민을 구하기 위한 '성스러운 결단'이라고 보수 우익은 미화하였다. 점령군 맥아더도 이에 가담하였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국민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천황의 말에 감동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허구다. 만일 자신이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정말 가졌다면, 패색이 짙어지고 연합군이 대도시를 폭격할 때 항복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최소한 원자폭탄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자기 자기를 지키기 위하여 머뭇거린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였다. 맥아더와 미국이 천황을 옹호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일본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천황을 필두로 한 일본 보수 우익을 꼭두각시로 만들어야 했었다.  


그런 전후 사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천황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였다. 전후 최초의 수상인 황족 히가시 쿠니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王, 1887~1990) 수상은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일억 총 참회'를 주장하였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전 국민이 평등하게 책임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최고 책임자는 책임을 안 지는데 국민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도쿄 전범 재판에 피고인으로 섰던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대답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였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명령은 천황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천황이 책임을 안 지는데 누가 책임을 진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일억 일본 국민이 책임을 질까?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하자 모든 사람은 명령에 순종한 죄밖에 없는 피해자가 되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는 이것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하였다.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최고 지도자 때문에 일본은 책임 의식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가해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나 죄책감을 다 회피하였다. 이제 와서 총리가 유감이라 말하고 정부가 사죄를 표명해도 그것은 입에 발린 말일 뿐이다. 책임을 감당해야 할 천황을 그냥 두고 말만 앞서는 일본은 동남아 피해국에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반성만 반복할 뿐이다. 실제로 일본 정치가나 국민이 가해자란 의식을 별로 가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은 형식적이든 가식적이든 전범 재판을 통하여 책임자들을 처벌하였다. 야스퍼스의 말처럼 그렇게 해서 독일은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았다. 일본은 책임질 사람이 뒤꽁무니 빼고 국민 뒤에 숨어버린 결과 후안무치한 나라가 되었다. 일본이 진정 참회하려면, 천황이 전면이 나서서 무릎 꿇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래야 일본도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다.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할 때 후안무치한 나라가 된다. 이웃나라 역사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참고도서>

위의 글은 가라타니 고진이 쓴 '윤리21'(사회평론, 2002년)을 요약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교인의 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