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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05. 2016

당신은 누구의 이웃입니까?

오리겐과 크리소스톰

AD 313년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있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드디어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 중 하나로 인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AD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 일은 기독교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AD306~337년 동안 황제로 재위한 콘스탄틴은 혼란에 빠져있던 제국의 상황을 수습하고 로마를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꿈에 예수님을 만나 승리를 약속받은 후, 312년 밀비우스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쳤다고 한다. 전쟁에 승리한 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원래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어머니 헬레나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지지하였다. 


그는 지난 1,000년 동안 수도 역할을 한 로마가 운이 다하였다고 생각하고 당시 상업 중심지인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는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Nova Roma)라 이름하고 로마처럼 7개의 언덕과 14개 구역으로 도시를 나누어 건설하였다. 비잔티움은 콘스탄틴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하였다. 약 100년 후 기록에 의하면, 로마식 극장이 2개, 공중목욕탕이 8개, 개인 목욕탕이 153개, 주랑이 달린 건물 52개, 곡물창고 5개, 수도교 또는 저수조가 8개, 교회가 14개, 궁전이 14개, 대저택이 4,388개에 달하였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였는데 주로 이교 사원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충당하였다. 자연스럽게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기독교는 황제의 막강한 지원 덕분에 점점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상 권세에 핍박만 받았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화형당하여 죽기도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도 하였다. 그때 교회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의 믿음은 순수하였다. 그들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리라는 순교 신앙을 가졌다. 초대 기독교는 핍박받는 사람을 품어주었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고, 억울한 사람을 위로하였다. 자신들이 핍박받고 가난하고 억울하고 약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였다. 


그런데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 중 하나로 인정하는 순간 모든 기독교인은 기뻐 춤추었다. 이제 고난은 끝났다. 마침내 기독교가 승리하였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마24:13) 


황제에게 잘 보이기 원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앞다투어 교회를 찾아왔다. 교회는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교인이라 인정하고, 특별한 교리 교육도 없이 세례 주고, 교회에 1, 2년 열심히 다니면 집사, 권사, 장로 줄까? 아니면 기독교 교리를 철저히 교육하고, 그들의 신앙을 확실히 점검한 후 세례 줄까? 처음에는 쉽게 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년 이상 교리 교육을 시켰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교회에 압박을 가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였다. 빨리 교회 중직을 얻어 황제와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다. 


결국, 교회는 세상 권력과 타협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타협하기가 어렵지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권력과 한 편이 되었다. 전처럼 약한 사람,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힘 있고 돈 있는 권세자 편에 서서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였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최고다.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다.’


당시 기독교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신학자는 오리겐(Origen, 185~254)이다.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였으며 순교를 각오할 정도로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그리스 철학에서 인간을 몸, 마음, 영혼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을 따라, 성경도 문자적 해석, 도덕적 해석, 영적 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문자적이나 도덕적 해석보다 영적 해석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소위 알레고리칼 해석(비유적 해석)이다. 

그가 영적 해석을 강조한 데는 나름 이해할만한 면이 있다. 당시는 기독교가 심한 핍박을 받는 시기였기에 현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바꿀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현실을 보기보다 영적인 의미, 영적인 세계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리겐의 영향은 초대 교회에 널리 퍼졌는데, 그들은 점점 현실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는 영성만 강조하였다. 


오리겐을 따르는 사람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있다. 그는 정치적 야망이 큰 자였다. 핍박의 시기가 지나자 교권을 장악하려고 힘을 다하였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감독을 자기편 사람으로 세우려고 애를 썼다. 그는 오리겐처럼 영적 해석을 강조하였는데 성경에서 가난한 자, 약한 자, 병든 자를 돌보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지 말고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환난의 시기에 현실보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라는 오리겐의 영적인 해석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권세를 가진 후에도 교인들에게 하늘만 바라보라는 해석은 삶의 현실을 외면하고 세속은 세속의 정치가에게 맡기고 오직 세상 권세에 복종하라는 뜻으로 와전될 소지가 많았다. 권세자의 구미에 딱 맞는 설교였다. 


이때 안디옥에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이 등장하였다. 그는 설교를 잘하여서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가졌다. 말만 잘한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도 탁월하였다. 그는 오리겐과 달리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신 것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크리소스톰의 문자적 해석(문법적 해석)은 성경 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는 기독교 본연의 모습인 청빈과 사랑을 실천하였다. AD387년 가혹한 세금 징수로 인하여 안디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안디옥 시민은 황제 동상을 쓰러뜨려 거리로 끌고 다녔다. 황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로마군은 안디옥의 폭동을 진압하였다. 황제가 사람들을 몰살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절망 가운데 두려워 떨고 있는 안디옥에 희망이 된 사람은 크리소스톰이었다. 그는 안디옥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그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로 안디옥은 진정하였고 황제도 안디옥을 용서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크리소스톰은 안디옥에서 제일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었고, 그의 활약은 콘스탄티노플에까지 퍼졌다. 


마침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넥타리우스(Nektarius)가 죽자 그의 후임으로 크리소스톰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안디옥에서 크리소스톰을 내주지 않을 것을 안 콘스탄티노플의 고위 관리들은 크리소스톰을 납치하여 강제로 임명하였다. 졸지에 대주교가 된 크리소스톰이지만,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의 맛을 보며 권력에 길들어져 가는 기독교를 개혁하였다. 돈으로 감독직을 매수한 6명의 교회 감독을 한꺼번에 파면하였다. 교회를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하면서 절약한 돈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병원을 세웠다. 


교회만 개혁한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까지 관심을 가졌다. 당시 약자들을 괴롭히며 학정을 일삼는 황후 에우독시아(Eudoxia)와 황후 주변에서 알랑거리는 주교들을 비판하였다.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황후의 심기를 건드렸다. 교권 장악 기회를 엿보던 테오필루스(Theophilus) 일파는 크리소스톰을 모함하여 파면하고 유배를 보냈다.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이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크리소스톰은 AD407년 로마의 변방 카우카서스에서 병사하였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순간부터 기독교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권력자의 편에 설 것이냐? 아니면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의 편에 설 것이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누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예수님은 가난한 자, 전쟁에서 패배하여 포로가 되어 노예 생활하는 자, 눈멀고 병든 자, 권세에 의하여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주께서 선포하시는 은혜의 해는 약한 자에게 해방의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두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을 이루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비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두 번째 계명에서 밝히신 바대로 이웃 사랑이다. 이웃사랑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도록 힘쓰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이웃에 대하여 정의하였다. 이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힘없어 설움 받고, 권력에 압제를 당하여 억눌린 자, 눈멀고 병든 자, 가난한 자에게 찾아가서 “누가 당신의 이웃입니까?” 물어보라고 하였다.(눅10:36) 예수님은 권세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 “누가 당신의 이웃입니까?”물어보라 하지 않았다. 


오늘날 기독교는 누구의 이웃인가? 권세자의 이웃인가? 아니면 약한 자들의 이웃인가? 안디옥의 시민이 견디다 못해 황제의 가혹한 세금에 저항하였을 때 크리소스톰은 시민의 편에 섰다. 


크리소스톰은 대한민국 기독교를 보면서 질문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의 이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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