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7
그리스도인은 세속 권세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로마서 13장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정치 사회적 배경과 로마서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맥락을 살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은 오늘의 사회 문화와 완전히 다른 2천 년 전 환경에서 기록하였다. 따라서 성경 본문을 볼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이 기록될 때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로마서 15장에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돌려줄 연보를 가지고 떠나려고 하였다.(롬15:25,26) 그러므로 로마서는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학자들은 주후 58년 봄이라고 짐작한다.
당시 로마 제국은 악명 높은 네로(Nero, 37~68)가 다스렸다. 바울은 선교 여행 중 여러 차례 로마 당국에 의하여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였다. 바울을 포함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가능한 한 로마 제국과 부딪치지 않기를 원하였다. 그렇지만, 로마 제국 아래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고, 십자가형을 받거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다. 사도 요한은 로마 제국을 성도들과 싸우는 권세(계13:7),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계11:7), 바빌론의 음녀(계17:5), 붉은 용(계12:3), 짐승(계13:1)으로 표현하였다. 바울 역시 세상의 권세와 통치자들을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같은 급으로 표현하였다.(엡6:12)
로마 시대는 요즘처럼 민주 사회가 아니다. 백성의 뜻을 왕에게 전달할 수단이 없었다. 설령 백성의 뜻을 전달한다고 해서 고쳐질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선택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켜서 정부를 전복하든지, 아니면 말없이 로마 제국에 순종하든지, 아니면 선택적으로 따를 것은 따르고 아닌 것은 죽음으로 저항을 하든지였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반란과 폭동은 반대하였다. 로마 제국을 뒤엎을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들은 할 수 있으면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기독교가 결코 위험하거나 적대적이 아님을 밝히므로 억울한 핍박을 피하고 싶어했다.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기독교가 로마 당국에 해가 없고, 오히려 유익함을 알려주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 제국의 지도에 무조건 순종할 수 없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신으로 여겼고, 온갖 이교들이 난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제국의 법을 따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법과 양심의 법에 어긋날 때는 죽음으로 저항하고 순교하였다. 로마서 13장은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성경이다. 요즘처럼 백성에게 주권이 있고, 백성이 지도자를 뽑으며, 자기 의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시대와 전혀 다른 시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의 장, 절은 성경을 편리하게 읽기 위해 1550년경 만들어졌다. 바울은 로마서를 장, 절로 구분하여 쓰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지나치게 장, 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로마서 13장 1-7절 말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악에 대해서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하였다.(롬12:21) 이어서 세상 권세에 복종하는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이 복종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최종 권세가 있음을 믿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를 세우신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 권세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저항하고 죽음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억울하다고 아우성치지 않았고, 오히려 찬송하며 죽었다. 바울이 말하는 바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식이었다. 가슴 아프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초대 교회 교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죽음으로 저항하든지, 복종하든지 둘 중 하나뿐이었다. 바울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로마서 13장 1절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에서 바울의 피눈물 나는 아픔을 읽게 된다. 악법도 법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때문에 로마법이 죽음을 요구하면,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초대교회 교인의 모습이었다.
성경은 어느 한 구절만 가지고 교리를 만들면 안 된다. 한 구절에서 말하는 내용이 성경 전체의 사상과 일치하느냐를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은 성경 전체의 흐름과 합치하는가? 성경을 살펴보면 세속 권세에 저항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의 산파는 갓난 아이를 죽이라는 잔혹한 바로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라 하였을 때 거부하였다. 다리오 왕이 삼십일 동안 자기 외에 아무 신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했을 때 다니엘 역시 거부하였다.
구약에 보면 이상적인 왕의 모습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렘22:16, 왕상10:9) 만일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편파적으로 법을 집행하고, 도덕적으로 잘못할 때 선지자들은 왕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설령 다윗 같은 왕이라 할지라도 그가 죄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그를 면전에서 책망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불의한 법률을 이용해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권력자를 비판하였다.(사10:2)
칼빈은 이러한 선지자적 사명을 존중하여 교회가 사회의 도덕성을 높이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교회(하나님의 사람)는 세속 권세를 감시하고, 가르치고, 나아가 비판하는 자이다. 대학 1학년 때 기독교 철학을 가르치던 손봉호 교수가 “기독교는 영원한 야당입니다.”하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교회는 세속 권세에 예속된 자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은 비판적으로 해석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
위에 있는 권세는 어떤 권세일까? 그 권세는 결코 최고 권위를 가진 권세가 아니다.(Calvin) 왜냐하면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권세가 자신이 최고 권위를 가진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사단적이다. 그러므로 세속권세는 절대적 복종을 강요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할 수 없다. 절대적 복종과 무조건적인 사랑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해당된다. 세상 정부가 아무리 자기와 정치 노선이 같고, 생각이 같다고 해서 그 정치 지도자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따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초대교부 이레니우스는 “왕은 숭배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C.S 루이스는 “나는 인간의 타락을 믿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하였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J.J.Rousseau, 1712~1778)는 인류가 지혜롭고 선하기 때문에 모두가 통치의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C.S 루이스는 달리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므로 어떤 사람에게도 아무런 제약 없이 동료 인간을 지배할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백성)이 권력자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합당한 정치제도라고 생각했다.
권세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하면 복종하라는 말이 절대적 복종을 뜻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섬기던 정치체제였다. 로마의 시인 호레이스(Horace, BC65~27)는 로마의 번영이 신들에게 복종을 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로마인은 개인의 삶과 종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위에 있는 권세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으로 쓴 것이라면, 로마의 신들에게 복종하라는 뜻이 된다. 바울은 세상이 혼란하지 않고 질서 가운데 있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복종은 세속 권세가 법과 질서를 세울 때 그것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마틴 루터나 오스카 쿨만 같은 사람은 무조건적,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의 결과 독일 루터교는 히틀러 정권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인류 최대의 범죄를 저질렀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악한 지도자들은 많이 있다. 소련의 스탈린, 우간다의 이디 아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일본의 히로히토 등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존 스토트(Jon Stott, 1921~2011)는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한 가지 예를 소개하였다. 1957년 헨드릭 버워드(Hendrick Verwoerd)는 수상이 되기 한해 전 토착민부 장관으로서 토착민 법률안을 발표했다. ‘교회, 학교, 병원, 클럽 혹은 다른 어떤 기관이나 오락장에서 인종 간의 교류는 무엇이든 금지한다.’는 법률이었다. 당시 케이프타운 성공회 대주교 지오프리 클레이튼(Geoffrey Clayton)은 그 법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편지를 썼다. 그다음 날 대주교는 암살당하였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세속 권세에 불복하는 경우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전도를 막거나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경우 등에만 한정지었다. 그러나 독재 정권 아래에서 신앙상의 이유 이외에 양심 때문에 불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동료 그리스도인을 밀고하라는 명령에 불복하여 죽는 사람도 허다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신앙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뜻에 어긋나는 경우, 양심의 법을 따라 세상 권세에 불복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1)
이 말씀은 어떤 특정한 정부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아 신성불가침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공인하신 것은 정부라는 원리 자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세속 권세일 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정부는 권위를 상실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속 권세를 세우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는 폐하기도 하신다.
바울은 세속 권세의 역할 기능을 설명한다. 세속 권세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어하여야 한다.(롬13:3,4) 세속 권세는 사법적이며 치안적인 기능을 할 때만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지 전쟁을 하거나, 약자를 괴롭히고 죽이는 일에 사용하도록 허락된 것은 아니다. 세속 권세는 시민이 가지지 못한 칼을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복종을 강요할 위험이 있다.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는 짐이 곧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의 역할 기능을 무시한 처사다. 왕은 법과 정의를 바로 시행하도록 세워진 권세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부 권세는 법과 정의 위에 있지 않다. 국가는 공의로운 법 집행을 위하여 권세를 가진다. 만일 통치 세력이 법을 어기고, 공의와 정의를 무시하고, 무전 유죄 유전 무죄를 넘어서 정치를 농단한다면, 이는 명백히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국가나 지도자는 법에 종속한다고 가르친다. 질서를 유지하고 법을 세워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 법을 어길 때, 그 정치체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가 아니다. 인간은 죄인이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 되어 세속 권세가 타락할 때 바른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폭력적 저항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국민 주권 개념이 없었고, 의사 전달 수단도 없었기에 바울은 가슴 아프지만 조건적 복종을 가르쳤다. 그것은 그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성경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불의한 정권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고 말하도록 선지자에게 명하셨다. 하나님은 때로 사울 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사무엘을 보내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사울 왕의 입장에서 이건 명백히 반역이고 쿠데타다. 그렇지만 열왕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셨다. 악한 왕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경우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권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아시리아나 바빌론의 악한 왕을 채찍으로 사용하시고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 적은 있다. 그러나 그들 악한 권세의 파괴적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그러한 행위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것을 바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악한 권세가 핍박할 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한다고 해서 악한 권세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 권세에도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1. 국가와 종교 / 미야타 미쓰오 지음 / 양현혜 옮김 / 삼인 / 2008년
2. 로마서 / 존 머리 지음 / 권혁봉 옮김 / 생명의 말씀사 / 1980년
3. 로마서 / 존 칼빈 지음 / 성서교재간행사 / 1979년
4. 로마서 강해,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 / 존 스토트 지음 / 정옥배 옮김 / IVP / 1996년
5. 로마서 / 에른스트 케제만 지음 / 한국신학연구소 / 1982년
6. 루터의 로마서 주석 / 마틴 루터 지음 / 박문제 옮김 / 크리스찬다이제스트 / 2001년
7. 로마서 연구 / 김경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78년
8.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 2 / 톰 라이트 지음 / 신현기 옮김 / IVP / 2010년
9. 정치 전도 / 리차드 J. 마우 지음 / 이정석 옮김 / 나비 / 1988년
10. 기독교와 사회학 / 데이비드 리온 지음 / 박영호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 / 1983년
11. 하나님 편에 서라 / 짐 월리스 지음 / 박세혁 옮김 / IVP / 2014년
12. 법의 신학적 기초 / 자끄 엘룰 지음 / 한상범, 장인석 옮김 / 현대사상사 / 1985년
13. 로마서 13장 1-7절과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 / 박용규 지음 / 신학지남 60권 2집 / 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