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시리즈 8
요즘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는 말씀을 두고 말이 많다. 바울이 말한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바른 해석일까?
첫째, 바울은 이 말씀을 어떤 흐름 가운데서 말했는가 그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 말씀은 어떤 정치 사회적 상황 속에서 말하였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세 번째,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사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해석되어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골치 아픈 이 본문을 나는 용기를 내어 과감히 도전해 보려고 한다. 먼저 2,000년 역사 속에서 이 말씀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Polycarp, 69~155)은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존경을 바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들과 관련하여 내가 그들을 변호해야 할 만큼 그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폴리갑은 자신들을 핍박하는 세속 권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음은 분명하다. 최초의 교부이며 로마 교회의 장로였던 클레멘트(Clēmēns Rōmānus)는 권세에 대해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무흠한 명령에만 복종하라고 하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기독교와 세상 권세는 긴장과 갈등 관계였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도 로마 정권에 의하여 수차례 감옥에 갇힌 경험을 한 후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기독교와 세상 권세는 갈등 관계를 청산하고 긴밀한 협조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떤 의도로 이 말씀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문자 그대로 위에 있는 권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이제 로마 제국은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되었고, 황제는 종교 회의를 소집하는 권리를 가졌다. 가이사랴의 교부 유세비우스(Eusebius, 260~340)는 ‘콘스탄티누스전’ 4권을 기록하면서 황제를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만인의 사제로 보았다. 이는 비잔틴 제국이 몇백 년 동안 유지한 '황제 교황주의' 기초가 되었다. 세속군주인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그를 따라야 했다.
로마 가톨릭은 비잔틴 제국과 달리 하나님의 대리자는 세속 군주가 아니라 가톨릭 교황이라고 해석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5c~1274)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황에게 영의 검과 세속의 검이라는 두 개의 검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는 영적 권세가 세속 권세 위에 있다고 보았다. 세속 권세가 바르지 못할 때 영적 권세를 가진 교황이 세속 군주의 권세를 회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가톨릭은 세상 군주가 바르지 못할 때(교황의 지도를 따르지 않을 때) 그를 거부하고 나아가 폐위까지 하였다. 중세시대 세속 군주들이 가장 무서워한 것은 로마 교황의 파문이었다. 문제는 중세 가톨릭 교황의 부패와 타락이었다. 교황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지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말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도 추기경도 수도사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세속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다만 사람을 영적으로 구원하는 역할만 할 뿐이지 세상 정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비록 세속 권세가 사악하고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루터의 주장은 민족주의에 눈 뜨기 시작한 독일의 제후들에게 큰 공감대를 이루었다. 어떻게 해서든 교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던 독일 제후들은 루터를 지지하였다.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역시 루터처럼 교황을 포함한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세속 권력에 복종해야 함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세속 권력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세속의 지배권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함 안에서만 그 권세를 행사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권세를 행사할 수 없다. 츠빙글리가 직접 저항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시민 저항권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1509-1564)도 루터의 전통을 따라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함을 가르쳤다. 국가는 평화와 합법적 질서를 유지하며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이상적인 기독교 국가론을 펼쳤는데, 교회는 국가보다 상위의 가치에 기반을 두었다. 교회는 사회의 도덕성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도록 직접 가르쳐야 한다. 칼빈은 츠빙글리처럼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뜻에 위반하는 명령을 한다면, 복종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주장함으로 저항권의 가능성을 열었다.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는 칼빈의 제자이고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로서 장로교의 창시자다. 그는 세속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아 죄 없는 자를 보호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 자를 벌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백성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악한 길로 이끌라고 권세를 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로마서 13장의 말씀은 무조건 복종이 아닌 조건적인 복종이다. 그는 약한 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폭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자비한 권력에 저항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의 저항 이론은 영국(국교회)의 압제하에 있는 조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데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비국교도로서 실낙원을 썼다. 그는 왕권과 의회가 갈등하는 국면에서 활동했던 청교도로서 시민 저항권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이 다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세상 권세들과 통치자들을 하늘의 악한 영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엡6:12)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세상 권세를 짐승으로 묘사하였다. (계13장)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인지, 사단(악한 세력)에게서 유래한 것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운영할 때만 합법적 권력이지, 부패한 권력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올바른 정부에 의해 부과된 세금이나 명령에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다. 그러나 악한 정부에 복종하는 것은 겁쟁이와 노예나 하는 짓이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도 하시지만 내리기도 하신다. 지배자가 실패했을 때, 지배의 권위는 백성에게 돌아간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자유로운 존재다. 그리고 만인 제사장으로서 주권을 가진 존재다. 백성이 통치 형태를 바꾸고 지도자를 새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밀턴의 사상은 영국 민주주의 초석을 놓았다.
미국의 청교도 조나단 매휴(Jonathan Mayhew, 1792~1854)는 청교도들이 영국의 왕 찰스 1세를 처형한 기념일에 폭군에 대한 저항권이 정당함을 설교하였다. 매휴는 지도자가 백성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따져 묻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권력을 판별하라고 가르쳤다. 매휴의 설교는 미국 독립운동을 예고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은 혼란 속에 빠졌다. 그때 등장한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보수적이며 민족적이고 반공주의자였다. 교회와 국가가 결속하여 무너진 독일을 재건하자는 히틀러의 제안에 독일 교회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1933년 독일 개신교 목회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살펴보면 70~80%가 보수적이고 민족적인 성향을 가졌다. 히틀러는 선전 성동에 탁월하였다. 그는 독일 기독교를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 가야 할지를 잘 알았다. 1933년 1월 독일의 수상이 되면서 그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정부는 기독교를 모든 도덕의 토대로서, 가정을 우리 민족과 국가 형태의 핵심요소로서 확고하게 보호하고자 한다.”
히틀러는 보수 기독교인이 좋아하는 가치인 가정 중심, 민족 중심을 천명하였고, 나아가 독일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공산주의를 박멸하자고 외쳤다. 히틀러가 제국 의회에서 성명을 발표한 지 2주 후 베를린에서 독일적 기독교인 신앙 운동(Glaubens-bewegung DC) 첫 회의를 열고 “제국교회의 창설과 혁명에 대한 신앙인의 권리”를 결정하였다.
“하나님은 나를 독일인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나의 독일을 위해서 투쟁하기를 원한다. 전쟁의 복무는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적 양심에 대한 폭행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다. … 독일적 기독교인 신앙 운동의 목적은 개신교 독일 제국교회 곧 히틀러의 국가교회라 부른다. 교회는 그 부름을 들어야 한다.”
히틀러는 보수주의, 반공주의, 가정 중심이라는 기치를 들고 독일 교인을 유혹하여 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높이고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약자들, 지적장애자들, 장애인들, 유대인들, 공산주의자들, 민주주의자들을 강제 수용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유대인을 포함하여 강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을 무차별로 학살하였다. 독일 제국 교회는 히틀러의 만행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지지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 권세에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세속 권세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불행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36년 식민지 통치를 경험하면서 악한 권세가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몸으로 경험하였다. 일본은 백성을 전쟁으로 끌고 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일본 제국에 아부하며 굴종하는 자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약하지만 의식있는 백성은 괴롭혔다.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악정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일본 신사에 모두 참배하도록 강요하였다. 불행한 일은 한국 기독교 대부분이 신사참배에 굴복하였다. 로마서 13장이 무조건적 복종을 말한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하였기에 일본의 폭정에도 거부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해방 이후 종교계 지도자들은 뜻없이 굴종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채 여전히 지도자인양 행세하였다. 권세에 굴종하고 머리 숙이는데 아무 부담감이 없었던 기독교는 이승만 정권, 유신 정권, 전두환 정권 밑에서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추종자가 되었다. 마치 비잔틴 제국 황제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해석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교회는 세속 권세 밑에 무릎을 꿇었다. 로마서 13장의 의미를 비잔틴식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가?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통하여 로마서 13장은 시대마다 해석과 적용에 차이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맞게 재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친나치 괴뢰 정권의 지도자 크비슬링(Vidkun A.L.J.Quisling, 1887~1945)이 노르웨이를 파시즘 국가로 개조하려고 할 때 노르웨이 교회는 반항하였다. 크비슬링 정권에 항의하여 노르웨이 교구 감독은 총사퇴하고 이어서 목사 전원이 사직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선언인 ‘교회의 근거’를 발표하였다.
“정치적 권위는 그 자체로 복종과 경의를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권위가 죄에 빠졌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싸워야 한다.
그것을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은 교회가 정치적 권위 위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노르웨이 교회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까?
1. 국가와 종교 / 미야타 미쓰오 지음 / 양현혜 옮김 / 삼인 / 2008년
2.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 추태화 지음 / CKoBooks / 2012년
3. 예수의 정치학 / 존 하워드 요더 지음 / 신원하, 권연경 옮김 / IVP / 2007년
4. 무정부와 기독교 / 쟈크 엘룰 지음 / 박건택 옮김 / 솔로몬 / 1994년
5.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 2부 9-16장 / 톰 라이트 지음 / 신현기 옮김 / IVP / 2010년
6. 독일 나찌 시기의 독일적 기독교인 운동 / 백용기 씀 / 신학사상 141집 / 2008년
7. 로마서 13장 1-7절과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 / 박용규 지음 / 신학지남 60권 2집 / 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