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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21. 2017

루터, 칼빈, 코페르니쿠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시리즈 15

“뭐 지구가 돈다고?”

“혹시 정신이 돈 거 아니야?”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 학자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나, 독일에서는 종교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하지 않나 하더니 이제는 온 우주를 바꾸려고 하는구먼.”

“세상 말세라고 하더니 이제 정말 말세가 되었나 보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하였다. 움직이지 않는 지구 주위를 태양과 달, 행성들이 원을 그리고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y, 100c~170c)는 알마게스트(Almagest)라는 책에서 우주론을 설명하였다. 이후 1,400년 동안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깨트릴 수 없는 과학의 원리로 생각하였다. 모든 학자는 감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도전할 생각을 못 했다. 성경학자들도 그 이론에 따라 성경을 해석했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 개정되어 1,000년 이상 사용한 율리우스 달력이 실제와 크게 어긋나 부활절을 정하는 기준인 춘분이 4세기에 비해 10일이나 차이가 나는 상황이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들이 시간과 천체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항해하는데 항해력이 맞지 않아 위험한 처지에 종종 빠졌다. 결국, 달력 개정 작업이 필요하게 생겼다. 1515년 교황청은 율리우스 달력을 개정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를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1.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폴란드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가 10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외삼촌 바르민스키(Warminski) 주교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였다. 문예 부흥이 한창이던 이탈리아에서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들을 연구하였다. AD300년 경 그리스 시대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주장하였다. 중세에도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도 지구의 자전을 주장하였으나 근거도 없고, 증명도 못 하였기에 소수의견으로 묻혀 버렸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는 프톨레미의 우주론 말고 다른 우주론이 있음을 인식하였다. 아직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이어서 천문학적인 관찰은 할 수 없었지만, 고전을 읽고 수학적인 계산을 거듭한 결과 태양중심설을 확신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1510년에 이미 '주석(commentariolus)'을 저술하여 자기 생각을 발표하였다. 그의 과학 이론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도 율리우스력 개정 위원으로 그를 임명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사상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무신론 철학자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에서 루터와 칼빈을 싸잡아 과학을 무시한 자들이라고 비난하였다.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코페르니쿠스를 조롱하였고, 칼빈은 시편 93:1 주석에서 “누가 감히 성령 위에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둔단 말인가?”라고 소리치며 코페르니쿠스를 공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러셀은 칼빈의 주석을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칼빈 주석에는 그러한 구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칼빈 주석은 보지 않고 역사학자 화이트(A.D.White)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서 근거도 없이 칼빈을 비판하였다. 화이트는 파라(William Farrar)의 책을 인용하였다고 밝혔다. 파라는 1885년 유명한 뱀톤강연에서 칼빈을 비난하였는데 그는 칼빈이 어디서 어떻게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무작정 칼빈을 비난했다. 파라의 말은 무신론자들 사이에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과학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루터와 칼빈이 살던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지구 중심의 프톨레미 우주론을 믿었다. 루터와 칼빈은 결코 과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과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루터와 칼빈은 중세 말 막 시작한 과학 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2. 루터와 과학


루터가 탁상담화에서 코페르니쿠스를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루터의 제자 라우터바흐가 루터에게 물었다. 

“선생님! 하늘, 태양, 달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운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점성술사가 있습니다. 이는 마차나 배에 탄 사람이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땅과 나무가 움직인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런 것도 괜찮아. 현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현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그런 사람이 천문학 전체를 뒤바꾸어 놓으려는 거다. 무질서에 빠트리는 이런 일들 속에서도, 여호수아는 지구를 향해 멈추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태양을 향해 멈추라고 명령하였기에 나는 성서를 믿는다.(수 10:12)”


루터의 탁상담화에 나온 이야기는 아델만(Adelmann of Liege, ?~1061c)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아델만의 이야기를 인용했다고 해서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을 평가한 루터의 과오가 무시될 수는 없다. 그러나 루터가 중심이 된 비텐베르크 대학은 새로운 과학에 대하여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텐베르크 천문학 교수인 라인홀트(Erasums Reinhold, 1511~1553)는 열렬한 루터파 신자이지만, 이미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정리하여 간편한 천문표를 작성하였다. 라인홀트는 16세기 중엽 유럽 최고의 수리 천문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라인홀트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수학 교수이며 자신의 제자인 레티쿠스(G.J.Rheticus, 1514~1574)를 코페르니쿠스에게 보냈다. 

레티쿠스(G.J.Rheticus, 1514~1574)

코페르니쿠스가 속해 있던 프롬보르크(Frombork) 지역은 폴란드 내 루터파 기사단과 전쟁을 치렀던 경험이 있기에, 1526년 루터파 신자는 다 추방하고, 루터파 서적은 금지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1523년 약 10개월간 임시 주교로 교구를 이끈 적이 있어서 그곳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코페르니쿠스가 루터파 학자 레티쿠스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외삼촌의 영향으로 가톨릭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으나, 자기가 좋아하는 과학을 하고 싶어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다. 과학을 매개로 가톨릭 사제 코페르니쿠스와 개신교 교수 레티쿠스는 하나로 뭉쳤다. 두 사람은 마음을 합해서 태양 중심설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려고 힘을 다하였다. 


루터파 수학자 레티쿠스는 무엇보다도 태양중심설이 성경과 부합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어서 1540년 ‘성경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1542년 갑자기 라이프치히 대학 수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떠나야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인쇄술이 발달한 비텐베르크에서 자신의 책이 출간되기를 소망하여 레티쿠스에게 원고를 주었다. 레티쿠스는 비텐베르크의 목회자 오시안더(A. Osiander, 1498~1552)와 크루시거(Caspar Cruciger, 1504~1548)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원고를 주며 출간을 부탁하였다. 1543년 5월 24일 마침내 비텐베르크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책 ‘회전(revolutionibus)’이 발간되었다. 오시안더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에 서문을 썼다. 

“독자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개념에 충격을 받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혁명적인 개념을 제기한 저자를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저자는 이 개념이 반드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이것을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오시안더는 혹여나 코페르니쿠스가 이단으로 지목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서문을 쓴 것이지만, 그의 서문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하나의 가설로 남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시안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이단으로 지목하고 그의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했다. 가톨릭은 1992년에서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정죄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사과하였다. 반대로 개혁의 중심 대학인 비텐베르크는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의 책을 출간하고 그의 학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과학사학자 웨스트만(R.Westman)은 루터파 개신교의 반응을 ‘비텐베르크 학파의 해석’이라고 불렀다. 


3. 칼빈과 과학


칼빈이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피에르 마르셀은 칼빈이 비텐베르크의 멜랑톤과 친하니까 그를 통하여 레티쿠스의 책을 보지 않았을까 추측하지만, 증거는 없다. 칼빈은 그의 주석 여러 곳에서 천문학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천문학은 즐거운 학문일 뿐 아니라 알아야 할 유용한 학문이다. 이 학문도 하나님이 찬양을 받을 만하다는 지혜를 제시해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존경받아야 하며, 시간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이런 면에서 수고를 계속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이 연구한 모든 내용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찬양을 받을만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제시해준다.”

옥스퍼드 대학의 과학자요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1953~)는 그의 책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에서 칼빈의 역할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칼빈은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 과학 연구 발전의 장애물을 없앴다. 성경에서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말씀을 듣는 당시 독자들의 세계관에 맞추어 말한 것뿐이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정확히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성경의 주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지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하나님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하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인간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의 한계 아래로 내려오시는 겸손한 행위다. 맥그라스는 칼빈의 사상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강조하였다. 


버트런드 러셀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루터나 칼빈을 비방한 것은 지금도 무신론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 러셀이 말했으니 확실하다는 것이다. 마치 중세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가 중심이라고 말했으니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종교를 개혁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종교개혁자들은 새로운 과학 이론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런데도 열린 마음을 가졌다. 루터가 말한 대로 “현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현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은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러한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과학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훼손되지 않는다. 영적인 지혜를 사모하는 우리는 세상이 무어라 말해도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


참고도서 

1.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정성희, 김주현 공역 / 도서출판 린 / 2013년 

2. 신학이란 무엇인가? /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김기철 옮김 / 복있는 사람/ 2016년

3. 신학의 역사 / 앨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소기천, 이달, 임건, 최춘혁 옮김 / 지와 사랑 / 2013년

4.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 하 / 주디스 코핀, 로버트 스테이시 공저 / 손세호 옮김 / 소나무 / 2014년

5. 위대한 양심 / 지그프리트 피셔 파비안 지음 / 김수은 옮김 / 열대림 / 2006년 

6. 교회 밖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교회사 이야기 / 유재덕 지음 / 호산 / 1998년

7. "코페르니쿠스의 과학 신학" / 현우식 씀 / 한국조직신학 논총 제37집 / 2013년

8. "칼빈과 코페르니쿠스" / 박희석 씀 / 총신대 논층 vol30 / 2010년

9. "지동설의 주창자 코페르니쿠스" / 박성래 씀 / 과학과기술 vol36 No1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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