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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10. 2017

진정한 목회자,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시리즈 20

츠빙글리는 존경하는 에라스무스를 따라 인문주의 종교개혁을 시도하였다.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가졌으며 교육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취리히에서 성경 강해, 성경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톨릭의 오류에서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아켐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강조한 대로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모범이며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 Christi)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인문주의 종교개혁은 교리보다 윤리와 생활을 더 강조하였다.


인문주의자들의 신플라톤적 경향을 따라 츠빙글리 역시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다. 성경은 영적이고 고귀한 것이지만, 외적인 문제 예를 들면 교회의 의식이나 정부의 형태 등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라스무스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은 가톨릭 교회 예식이나 교황 정치 형태에 대해선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교황의 권위에 직접적 도전을 삼가했던 인문주의 개혁자들에 대해서 가톨릭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가톨릭 측에서도 자신들의 부패함과 타락을 인식하였기에 교회 울타리 안에서 개혁을 외치는 것을 오히려 지지하기까지 하였다.


인문주의 개혁자 츠빙글리가 진정한 종교개혁자로 돌아선 데에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1519년 여름 스위스 전역에 흑사병이 퍼졌다. 뚜렷한 치료 약이 없던 그 시절 흑사병은 재앙이었다. 예전에는 죽은 자의 옷이나 이불을 사고파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행위는 전염병을 더욱 확산시켰다. 인구의 1/4에서 절반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최선의 대책은 흑사병이 없는 지역으로 피난 가는 것뿐이었다. 흑사병을 발견한 의사는 제일 먼저 도망을 쳤다. 부자들도 도망을 쳤다.

흑사병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

1519년 8월 취리히에 흑사병이 번지자 단 1년 만에 인구의 1/4이 죽었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츠빙글리는 마침 바더 페퍼스(Bad Pfäfers)라는 곳에서 온천 치료를 하던 중이었다. 사역지인 취리히에 흑사병이 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츠빙글리는 교우를 돌보기 위하여 급히 돌아왔다. 그는 환자들과 사망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의 형제 안드레아스(Adreas)도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 의사들도 무서워 도망친 가운데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우를 돌보았다. 마침내 츠빙글리도 흑사병에 걸렸다.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바젤과 콘스탄스에 나돌았다.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에 츠빙글리는 죽음을 예감하였다. 석 달 정도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고통을 겪은 끝에 기적적으로 회복하였다. 1519년 12월 31일 그의 친구 오스발트 미코니우스(Oswald Myconius)에게 자신이 회복하였으며, 상처 부위에 발랐던 반창고를 제거했다고 편지하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흑사병의 노래(Pestlied)’를 썼다.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스위스와 독일 개신교회 찬송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루터가 수도원 탑에서 구원의 진리(이신칭의)를 깨달은 것처럼, 츠빙글리는 흑사병의 경험을 통해서 확실한 신앙체험을 하였다.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 낙관적 생각을 하였는데 이제 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를 깨달았다. 츠빙글리는 흑사병을 통하여 종교개혁 사상을 형성하였고, 남은 생애는 하나님께서 여분으로 주신 것으로 알고 힘차게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이후 그는 생명을 내놓고 종교개혁의 길을 걸어갔다.


흑사병의 노래는 3절로 되어 있다.

1절(투병 초기)

주 하나님이여! 곤경 속에 있는 나를 도와주소서.

죽음이 문 앞에 온 것만 같습니다.

그리스도여! 당신은 죽음에 대항하여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인지.

저는 당신에게 부르짖습니다.

저를 죽이는 이 화살을 빼 주시기를

제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저에게 안식 주기를

주님 저를 죽게 하시렵니까?

저는 삶의 한가운데서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기를

저는 당신의 그릇입니다.

만드시든지, 아니면 부수어 버리소서!

설령 당신이 이 땅에서 제 영혼을 가져가신다 하더라도

당신은 제 영혼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으실 것이며

혹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오점이 되도록 하지 않겠지요..


츠빙글리는 흑사병 앞에서 인간의 허약함과 나약함을 보았다. 그는 로마서 9장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자신은 연약한 질그릇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가졌던 낙관적 인간론을 버렸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며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67개 논제에 대한 해제를 쓰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정의를 하나도 손상함 없이 우리를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자신의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한 부류를 선택하시며 그들이 (그분의 도구로써 활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는 인간이 만든 규례나 교회의 전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인문주의자로서 가톨릭과 타협적인 개혁을 시도하던 자리에서 나와 확실한 종교개혁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흑사병 때문이었다.


2절(투병하는 동안)

주 하나님이여 나를 위로하여 주소서.

병은 갈수록 심해지고 고통과 두려움이 내 육신을 사로잡습니다.

저의 유일한 위로자시여 저를 도와주시고 은총을 베푸소서.

마음의 소원과 소망을 당신께 두며

(세상의) 온갖 유익과 손실을 하찮게 여기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시잖습니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내 혀는 말문이 막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감각은 전부 말라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이 나의 싸움을 싸우실 때입니다.

나는 미쳐 날뛰는 저 악한 무법자에게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만을 신실하게 의지합니다.


2절에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웠던 표어들이 다 있다.

sola Gratia - 그는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였다.  

sous Christus -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sola Fide - 죽음의 위기에서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츠빙글리는 지금까지 성경 본문을 연구하며 학문적으로 종교개혁의 정신을 배웠다면, 이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체험적으로 실존적으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았다.


3절 (건강이 회복되며)

주 하나님이여 건강을 주소서!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않도록 하실 것이기에

제 입술은 당신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이전보다 더 많이 선포하렵니다.

어떤 속임수도 없이 순수하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얼마나 제가 죽음의 형벌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는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앞으로 하늘의 보상을 기뻐하며 이 세상 안에서 저항할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도움으로 인하여,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다.  이제 앞뒤를 재며 적당히 타협하는 자가 아니라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하였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하나님만 바라며 앞으로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결심대로 종교개혁의 길을 걸어갔다. 이제 타협적인 인문주의 개혁자가 아니라 확실한 종교개혁자가 되었다. 루터보다 2년 늦은 시점이지만, 그는 결코 루터와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신의 길을 생명 다하는 순간까지 걸어갈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개혁자가 되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개혁교회의 표어는 츠빙글리에게서 시작하였다. 그는 인문주의 개혁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성경에 대한 강조를 잃지 않았다. 연속적인 성경 강해의 전통을 수립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조직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취리히 시민을 지도하였다. 그는 개인주의적인 구원을 강조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의 삶을 강조하였다.

시민들과 함께 마음을 툭 터놓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론내리기를 소망하는 민주적 개혁자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개혁은 9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끝났다. 만일 그가 루터나 칼빈처럼 오랫동안 개혁자로서 살았더라면 아마 기독교의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가 펼쳐가려고 했던 종교개혁의 방향은 오늘 한국 교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참고도서

1. 카터 린드버그, 유럽의 종교개혁, 조영천 옮김, (서울 : CLC, 2012)

2. 루이스 W. 스피츠, 종교개혁사, 서영일 옮김, (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3. 스티븐 니콜스, 세상을 바꾼 종교개혁 이야기, 이용중 옮김, (서울 : 부흥과 개혁사, 2009)

4. 양태자, 중세의 뒷골목 풍경, (서울 : 이랑, 2012)

5. 조용석, "츠빙글리의 역병가(Pestlied)연구" ⌜장신논단⌟ Vol 46 No2 (2014)

6. 박경수, "스위스 개혁교회의 아버지 츠빙글리의 흔적을 따라가다."  ⌜목회와 신학⌟ 1월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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