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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21. 2017

소박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림.

빈센트 반 고흐

"나는 화가들의 의무가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반대로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림을 더 훌륭하게 끝맺고 싶다. 정성 들여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거창한 전시회보다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생전에 860점의 유화를 남겼다. 데생까지 포함하면 대략 2,100점의 작품이 남아 있다. 일찍부터 습작으로 그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다. 그가 37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2,100점의 그림 대부분은 7년간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루 평균 한 점의 그림을 그렸다. 


어마어마한 노력에 비해 그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다. 살아생전 그의 그림은 단 한 점 팔렸다. 그것도 친구가 사 준 것이다. 단돈 백 프랑이었다. 같은 시대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뇌빌(Alfred de Neuville,1852~1941)의 그림은 15만 프랑이었다. 


미술을 정식으로 배우라고 주변에서 권했지만, 틀에 박힌 그림보다 철학을 가지고 그림 그리기를 희망하여 거절했다. 평생 가난하고 고독한 삶을 살면서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인정하였다.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반 고흐의 삶이 불행했다고 말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가난했으니. 외로웠으니. 그래서 정신이 미쳐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수군거린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인문학 교수 스티븐 네이페 박사(Dr. Steven Naifeh)와 하버드 법학 교수 화이트 스미스 박사(Dr. Gregory White Smith)는 960페이지의 반고흐 전기를 쓰면서 타살설을 주장하였다. 지금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죽음 이야기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난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는 행복했다고 결론 내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은 누구보다도 행복하였다. 수도자처럼 매일 이젤을 메고 야외로 나가는 그는 행복했었다. 사람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일 보잘것없는 작업이 쌓여 나중에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려질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지금 그의 그림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어느덧 목사가 된 지 27년이 되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성경 보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처음 담임 목사가 되었을 때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의욕은 차고 넘쳤고, 비전은 크고 원대했다.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홈런을 쳐야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하였다. 결국, 헛스윙만 반복하며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을 비워야 한다. 참고 또 참으며 낮아져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지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야 한다. 비록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당대나 후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주님은 나를 반겨 맞아 주실 것이기에 오늘도 또 한 걸음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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