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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04. 2017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Power corrupts; absolute power absolutely corrupts) 19세기 영국의 사학자 액튼경(John Dalberg-Acton, 1834~1902)이 말하였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불과 백 년도 안되었는데 권력의 부패는 언제나 골칫거리다. 2011년 한국 반부패정책학회 연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9명(87.5%)이 ‘대한민국 사회는 썩었다’고 응답했고, 이 중 가장 부패한 직업으로 정치인을 지목했다. 2016년 대한민국 국가 청렴도는 100점 만점에 53점 세계 176개국 가운데 52위를 하였다. 2015년 37위였는데 한 해 만에 순위가 15개나 내려갔다. 문제는 이 순위가 최순실 국정농단 이전 순위라는 사실이다.


중세 종교 권력은 1,000년을 유지하였다. 교황은 전 유럽을 장악하였고, 왕도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라고 해서 부패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의 부패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당시 지식인치고 개혁을 외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종교 권력의 타락으로 인해 중세는 더럽고 추악한 이미지로 가득 차 흔히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연 중세 1,000년이 깜깜한 암흑으로 가득 찬 시기였을까? 중세 성당을 고딕 양식이라고 한다. 고딕이란 고트족의 양식을 따라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조롱 조로 쓴 말이다. 야만적인 건축물이란 뜻이다. 그런데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은 고딕 양식 예술이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답고 경이롭다고 감탄하였다. 중세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편견을 벗어버리고 중세를 차근히 살펴보면, 우리가 깜짝 놀랄 정도의 문화와 문명을 이룬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몇백 년에 걸쳐서 지은 거대한 석조 교회나 시 참사회당, 돌로 깔아 놓은 보도 등 중세도시를 보면 중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의 기술과 열정과 헌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들은 교회 곁에 반드시 병원 건물을 세웠다. 유럽사에서 병원 역사를 보면,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로마 군단의 부상자 수용시설을 만든 것에서 출발한다. 그 후 6~7세기 빈민 구제 시설을 만들고 빈민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다. 1145년 몽펠리에에 세운 성령병원은 12세기 중반 병원 창설에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교회 안에 세워진 기사단 회가 병원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중세 후기로 가면, 각 도시는 길드를 내세워 의료와 사회적 지원을 담당할 병원과 각종 시설을 적극적으로 건설하였고 관리 시스템의 경우도 성직자에서 일반인으로 변화하였다.

1331년 세워진 뉘른베르크 성령병원(Nuernberg Heilig Geist Spital)

당시 병원은 순례자 수용시설로도 이용하였기 때문에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빈민구제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중세도시의 장인조합은 현대의 연금제도, 건강보험제도, 장애보험제도에 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부모 없는 아가씨에게 결혼자금을 주기 위한 기금도 운영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 도시는 근대 사회복지의 원점이 되는 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근대 유럽 문화는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고 중세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이룬 것이다.


중세인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요사이 웰다잉(Well-Dying)운동이 벌어진다. 행복한 죽음은 없겠지만, 고통 없이 잠자다가 조용히 죽었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중세는 죽음을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인사도 못 하고 죽는 것을 나쁜 죽음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성 크리스토포루스에게 낮 동안 나쁜 일을 당하거나 교회의 성사도 받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15세기만큼 죽음에 대한 사상이 무겁게 짓누르고 강렬한 인상을 준 시대는 없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호소가 삶의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카르투지오회 수도사 드니는 ‘귀족생활 지침서(Directoire de la vie des Nobles)에서 귀족들에게 충고한다. “그대가 침대에 누울 때 늘 이것을 생각하라 머잖아 남의 손으로 그대 자신이 묘 속에 이렇게 눕혀지리라.” 중세 교회는 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라고 열심히 가르쳤다. 한번 흑사병이 돌면 인구의 1/3이 죽었다. 엄청난 전염병 때문에 공동체는 무너져 내렸지만,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다하였다.   


프란체스코 수도사 자코포네 다 토디(Jacopone de Todi, 1236~1306)는 ‘왜 세상 사람은 덧없는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가?’라는 시를 썼다.


말하라, 그 옛날 고상한 솔로몬은 어디에 있는지.

무적의 장수 삼손은 어디에?

미모의 압살롬 그 빼어난 얼굴은?

애정 깊고 다정한 요나단은?

카이사르, 어디에 있는가? 그 고귀하던 제왕이여.

아침 식사를 호화롭게 베풀던 그 부호와 사람들은?

아니, 어디에 있는가, 웅변가 툴리우스, 키케로는?

또 아리스토텔레스, 최고의 지성은?


이 세상의 삶은 곧 죽음 이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였다. 그들은 천국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생전에 선행을 자주 하고, 교회에 재물을 기증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죽음은 로마교황이나 추기경도 피할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 모은 물질보다 죽음 이후의 삶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물질문명에 물든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교회와 사회와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하였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건축양식인 고딕 교회당, 병원, 빈민구제원, 양로원 등이 이때 생겨났다.

교황도, 황제도, 추기경도 죽음의 사신에 이끌려 간다. 

프랑스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중세인의 태도를 “시간에 대한 거대한 무관심”이라고 평가하였다. 중세인은 현대인처럼 정확한 시간관념이 없었다. 지역마다 하루의 시작점이 달랐다. 대개 일몰과 일출을 기준으로 삼는데 하루의 길이는 계절마다 달라지곤 하였다. 시간 개념은 고사하고 한 해를 측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들은 그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갔다.


중세인들은 이 세상도 늙어간다(Mundus senescit)고 생각했다. 역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몇백 년에 걸쳐서 교회 건물을 지은 것은 그러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일 년도 안되어서 뚝딱 건물을 짓는 현대인과는 전혀 달랐다. 날씨가 안 좋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었던 그 시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기들이 감당할 몫을 담당할 뿐이었다. 그의 후손들이 이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할 것을 믿었다.


중세 문화는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관념하에 생성된 문화다. 비록 잘못된 해석과 생각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평가하는 대로 마냥 추악하고 어두웠던 시기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세인들의 삶의 자세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많이 있다.


참고도서

1.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이희승맑시아 옮김, (서울 : 동서문화사, 2013)

2. 호르스트 푸어만, 중세로의 초대, 안인희 옮김, (서울 : 이마고 , 2003)

3. 아베 긴야, 중세 유럽 산책, 양억관 옮김, (파주 : 한길사, 2005)

4. 쟈크 르 고프, 서양 중세 문명, 유희수 옮김, (서울 : 문학과 지성사, 2004)

5. 자크 르 고프, 장루이 슐르젤, 하루 10분 일주일 중세 여행, 안수연 옮김, (서울 : 에코 리브르, 2008)

6. 마크 코피, 스탠리 하우어워스, 한문덕 옮김, (서울 : 비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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