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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11. 2017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

초등학교 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려면 먼저 자전거를 배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짐 자전거 하나를 빌려 오셨다. 발이 페달에 닿지도 않는 어른 자전거였다.

“아버지! 발이 닿지 않아요. 전 이런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아버지는 뒤에서 잡아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를 믿고 자전거에 올라타 까치발로 페달을 밟았다.

“와! 간다!”

조금 달리는 것 같다가 이내 콰당 넘어졌다. 뒤에서 잡아 주신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는 다시 해보라고 나를 격려하였다. 그 후 몇 번 더 넘어졌다. 결국, 난 울고 말았다. 그 후로 난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하였다. 자전거 타기에 실패한 나는 소심한 아이로 바뀌었다. 조금 어려움이 다가오면, 조금 힘든 일이 다가오면, 이내 포기하였다.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배우려면 넘어지고 깨지는 것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무르팍도 깨지고 머리도 터지는 일이 있어야 한다. 큰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배우다 손목이 부러진 적이 있다. 그래도 그 아인 깁스를 하고 다시 도전하였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하지만, 큰 아이는 롤러스케이트를 아주 잘 탄다.


태아는 모태에서 우주비행사처럼 무중력 상태에 있다가 출생과 동시에 1G만큼의 중력을 받는다. 아이가 처음 중력을 경험할 때 어떤 느낌일까? ‘이 세상은 온통 어깨를 짓누르는 것뿐이로구나!’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아이는 서서 걷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기필코 일어서리라 다짐하며 아이는 힘을 내본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딘다. 아이가 제대로 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지는지 셀 수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지는 중력의 무게에 과감히 저항하고 마침내 아이는 달리기도 하고 높이 뛰기도 한다. 사람은 일평생 1G의 중력을 마주한다. 노년이 되었을 때 다리에 근육이 빠지면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해 땅에 가까이 다가간다. 결국 땅에 묻힐 수밖에 없다.


얕은 바다에 밀려온 고래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는 이유도 체중에 미치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호흡기관이 마비된 탓이다. 사람도 5G의 중력이 가해지면 사망한다.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날아가기 위해 중력가속도를 견디는 훈련을 한다. 우주인 후보들은 5G를 30초간 버텨야 한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몸무게의 5배나 되는 힘을 느낀다.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고, 숨을 쉴 수 없으며, 정신을 잃을 정도다. 그래도 그 중력가속도를 이겨내야 비로소 우주의 신비한 세계를 비행할 수 있다.


건강은 중력을 이겨내는 것이다. 근육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강해지는 법이다. 운동선수들은 신체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린다. 온 힘을 다하여 바벨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헬스 코치가 옆에서 “더! 더! 더!” “할 수 있어.” 목청껏 외친다. 승리하는 운동선수는 그렇게 피땀 흘린 결과로 만들어진다.


바울은 유럽 선교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3주 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행17:2) 그러나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행패가 심해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다.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그들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베레아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신경 쓰였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파송하여 그곳 형편을 알아보게 하였다. 디모데가 돌아와서 전한 소식은 너무나 기쁘고 놀라운 소식이었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1:6,7)


예수를 믿은 지 불과 3주밖에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너무나 의젓하였다. 바울은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늘 환난을 각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살전3:4)

예수 믿으면 체포당할지도 모르고,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심지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초대교인들의 신앙은 잠시 있다 가는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3:2)


초대 교인들은 예수 믿을 때부터 환난과 시험을 각오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스트레스와 고난을 견디리라 다짐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2:3)

그들은 무려 300년 동안 참고 견뎠다. 그 어떤 시험에도 견뎌내는 그들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승리자다.


오늘날 예수 믿는 대부분의 사람은 평안과 행복과 형통을 목적으로 한다. 예수 믿어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고, 가족이 하는 일마다 다 풀리기를 소망한다. 막혔던 문이 열리고, 굽었던 길이 곧게 펴지기를 소망한다. 그 어디에도 ‘고난을 받으라! 고난을 각오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고난과 시험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않는다.


조금만 시험이 와도, 조금만 힘든 일이 다가와도, 조금만 관계가 어려워져도,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만 포기해버린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무릎이 깨지고, 머리가 터지면서 몸으로 신앙을 배워야 하는데 머리로만 신앙을 배우려고 한다.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하지만, 머리만 커지고 몸은 점점 둔해진다.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능력만 키운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부과되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기와 같다.

전 세계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진통제다. 일반 진통제로는 감당이 안 되어 마약성 진통제(opioid analgesics) 및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엄청나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9~2010년 사이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여성들은 4만 8,000명에 이른다. 10년 새 여성 사망자 수가 400% 증가했다. 2010년도 경우 하루 평균 18명의 여성이 진통제 문제로 사망했다. 이는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보다 많은 수치다. 진통제로 인한 사망자 발생 증가는 중년 백인 남성에게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골과 가난한 지역에서 발생이 높았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식품의약품 안전처에 따르면, 진통제는 2년 연속(2015-2016) 부작용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약으로 꼽혔다. 통증을 없애기 위하여 진통제에 의지하는 현대인은 그만큼 유약해졌고, 위험해졌다.


행복과 형통만 추구하며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 역시 그만큼 유약해졌고, 위험해졌다. 기독교가 힘을 잃어버린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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