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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16. 2017

억울한 막달라 마리아

초등학교 시절 여자아이들 이름중에 유난히 아들 자(子)가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경자, 금자, 달자, 문자, 미자, 복자, 선자, 숙자, 순자, 연자, 영자, 옥자, 은자, 인자, 초자, 춘자, 화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딸인데 왜 아들 자(子)를 사용해서 이름을 지었을까? 일본풍을 흉내 내서 그럴 수 있고, 부모가 아들 낳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지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도 딸을 낳으면, 흔히 짓는 이름이 있다. 마리아다. 복음서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나온다. 자칫하면 성경 읽을 때 이 마리아가 저 마리아가 같아서 헷갈릴 경우가 있다.


1.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2. 마르다의 여동생 베다니 마리아

3.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4. 세베대의 아내이며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 마리아 (예수님의 이모 마리아) 

5.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글로바 마리아

6.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 당시 여성은 수에 치지도 않았다. 신명기 율법에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은 여성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인지 복음서에는 이름 모를 여인도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였다. 흔히 사람들이 멸시하는 간음한 여자, 창녀, 사마리아 여자, 이방 여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아주셨다.


성경에는 주로 예수님의 남자 제자들이 나오지만, 잘 살펴보면 여자들도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27:55-56)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나 세베대의 어머니는 아들이 예수님의 제자여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반면에 막달라 마리아는 일가 친척이 아무도 없는 천애 고아였다. 일곱 귀신 들렸던 그녀가 예수님에게 고침 받은 후 자기 인생 전부를 걸고 주님을 따라다녔다. 그녀는 갈릴리 여자들을 거론할 때마다 언제나 첫 번째로 거명(擧名)되었다.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조용히 뒤에서 섬기며 나서지 않았다.(눅8:3) 누가복음 8장에 잠시 등장한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야 비로소 전면에 나타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실망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제자들은 앞으로 닥칠 환난과 핍박을 예상하며 두려워하였다. 그때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두 문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있을 때, 그녀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자 하였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가시는 예수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을 주동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녀는 여장부였다. 예수님은 바로 그녀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으셨다. 주님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그 여인이야말로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성경학자 중 일부는 예수님의 부활을 계기로 막달라 마리아가 초대 교회 여성 지도자로 떠올랐다고 추측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모두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하는 것을 보아 이러한 추측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를 심하게 왜곡시킨 사람이 있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Magnus, c540~604)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성경은 너무나 비싸고 귀한 책이었다. 교회나 수도원에만 보관되었던 성경은 사제와 학자들만 읽을 수 있었다. 일반인은 설교 시간에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로 만족하였다. 성경을 볼 수 없는 그들은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교황권을 확실하게 정립한 그레고리우스 1세는 591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40개 설교⌟ (Gregory the Great Forty Gospel Homilies, Gorgias Press LLC, 2009) 33번에서 이렇게 설교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가 죄인이라 부르고 요한은 마리아로 부른 여인입니다. 마가는 그녀를 일곱 귀신이 나간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이 일곱 귀신은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이 여인은 금지된 성적인 행위를 위해, 자신의 몸에 향수를 뿌리기 위해 이 향유를 사용해왔습니다. 그녀가 부끄럽게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사용한 것을 이제 칭찬받을 만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눈으로 욕망의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고해성사와 회개로 세상 욕심이 눈물로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얼굴을 내보이기 위해 치장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그녀는 입으로 자신을 자랑하였지만, 이제는 주님의 발에 입 맞추고 자신의 입을 대속자의 발 위에 갖다 댑니다. 그녀는 모든 쾌락을 자신을 위해 사용했지만, 이제는 자신 스스로 불태웁니다. 그녀는 수많은 죄를 덕으로 바꿔 하나님을 고해성사로 회개하고 섬깁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고해성사로 죄사함받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심하게 왜곡하였다. 그는 베다니 마리아와 갈릴리 나인 성 근처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눅7:37)과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마26:7)을 혼합하여 성경과 전혀 상관 없는 막달라 마리아를 만들었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해석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들린 것은 일곱 가지 큰 죄를 지었다는 뜻이고, 그중에 가장 큰 죄가 창녀로서 성적으로 문란한 것이라 해석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귀신들림을 음란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없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남자를 고쳐준 경우가 여러번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음란죄 때문에 귀신들렸다거나, 귀신들려서 음란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지 않았다.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음란하다고 해석한 것은 그레고리우스의 지독한 편견이다.


교황은 절대로 틀릴 일이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로서는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초대교회 위대한 여성 지도자요,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졸지에 창녀가 되었다. 이보다 더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오해는 있을 수 없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설교 이후 1400년 동안 막달라 마리아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멜 깁슨이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은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 ‘지저스 크리스이스트 슈퍼스타’ 역시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묘사하였다. 심지어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찬송(211장)을 지은 파커(Edwin Pond Parker, 1836~1920)목사 조차도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드렸다고 잘못 생각하였다. 


이제 더는 그녀에게 불명예를 안겨 주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창녀인 적도 없었고, 일곱 가지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도 없다. 그녀는 조용히 예수님을 섬기며 따랐던 여인이다. 그녀는 인생 전부를 걸고 주님을 따랐으며 생명 바쳐 주님을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모두가 불안에 떨며 두려워 숨을 때 과감하게 주님 무덤을 찾아갔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믿음의 여인이다. 그녀는 용감하고 강인한 여성 지도자였다.

부활의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되어야 한다.


참고도서

1. 배철현, 인간의 위대한 질문, (파주 : 21세기북스, 2015)

2. 한미라, 여자가 성서를 읽을 때,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2)

3. Luise Schottroff, "예수의 무덤 옆에 있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신학사상 38집⌟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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