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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07. 2017

세 여자

에스더 이야기 7

세상은 강자가 지배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도 강자다. 강자가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 다스린다. 게임의 규칙은 모두 강자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었다. 약자는 말없이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성경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에 반기를 든다. 하나님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약한 노예를 해방하여 나라를 만들었다.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뒤엎고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은 꿈꾸셨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노래하였다. 

“그는 억눌린 자를 위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시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를 석방하신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며 

의로운 자를 사랑하신다. 

여호와는 나그네를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지만

악의 계획은 좌절시키신다. 

여호와는 영원한 왕이시다. 

시온아, 네 하나님이 대대로 통치하시리라. 

여호와를 찬양하라!”(시146:7-10)


에스더서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전, 언약, 기도 및 다른 종교 요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약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에스더서에서 약자는 명백히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온 유대민족이다. 어느 한 곳에 집성촌을 이루며 자기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자기 권익을 옹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유대인이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족이다. 밟으면 밟혀야 하고, 죽이면 죽어야 하는 약자들이다. 에스더서는 꿈틀거림도 없이 밟혀 죽어야 하는 지렁이의 반격을 다룬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에스더서는 출애굽기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에스더서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약자는 여자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만큼이나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여성이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조력자나 보조자이거나 장식품 정도였다. 남자가 여자를 싫어하면, 이유와 상관없이 언제든 버릴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칠거지악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여성은 언제나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에스더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철퇴를 가하는 책이다. 에스더서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와스디, 에스더, 세레스. 각자 처한 위치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여성은 수동적이지 않다. 과감히 남성에게 대들거나, 남성을 지도하거나, 민족을 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에스더서는 그런 면에서 여성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같은 책이다. 

1. 와스디  


남성이 바라보는 와스디는 왕명(남자)을 거스르는 불순종의 여인이다. 흔히 와스디는 자신의 미모만 믿고 남편의 명령을 무시한 교만한 여자로 묘사한다. 설교자들이 대부분 남성이었기에 남성의 시각으로 와스디를 평가하였다. 교인들에게 “와스디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물으면 많은 사람이 악녀, 교만, 불순종이란 말을 한다. 와스디에 대한 이런 평가는 정당한가?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와스디를 다시 평가해 보고 싶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 권세와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 술 잔치를 벌였다. 술에 한껏 취한 왕은 왕후를 단장시켜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고관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에1:10-11) 남자가 아내를 자랑하고픈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장식품처럼, 쇼윈도 마네킹처럼 남편의 낯을 세워주기 위하여 어색한 미소를 띠며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을까? 남편이 자신을 귀중한 반려자로 대우해 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여성은 아름다운 인형이 아니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한 인간이다. 


왕후 와스디는 절대 권력자인 남편의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독재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때 당할 희생을 몰랐을까?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와스디는 에스더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도 당당한 인간임을 선언하였던 것은 아닐까? 마음에 맞지 않아도 무조건 순종하고 고개 숙이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노예다. 굴종이다. 와스디는 여성도 생각하는 인간임을 선언하였다. 절대 권력자 앞에 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한 와스디 이야기를 듣던 고대 여성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에스더서나 룻기는 유대 여성이 즐겨 읽던 성경이었다. 고대 유대 여성이 에스더 이야기를 읽으면서 상쾌 통쾌하지 않았을까 나는 잠시 상상해 본다. 


2. 에스더


에스더는 언제나 용모가 곱고 아리땁고 순종적인 여인으로 인정받았다. 에스더는 신실하고 희생적이고 겸손하여 민족을 구한 여성으로만 생각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순종적인 모습으로 주목받는다. 그녀는 모르드개의 지시대로 자기 신분을 숨기고 왕후가 되기 위하여 왕궁에 들어갔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평생 후궁에 갇혀 살아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수 있지만, 에스더는 순종하였다. 그녀에게 무슨 자의식이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생각없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민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였고, 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주도권을 가지고 상황을 이끌어 갔다. 모르드개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모르드개에게 지시하였다.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그녀는 생명을 거는 모험을 하였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드개에게 묻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가 하만과 왕을 초대하여 잔치하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에스더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신중하였다.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분별하였다. 


무조건 하만을 험담하는 미련함을 보이지 않았다. 왕은 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였다. 그녀는 무조건 살려달라고 땡깡부리기 보다 왕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왕에게 말하였다.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에5:4) 

히브리 원문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왕이여 오소서. 그리고 하만도. 오늘 내가 그(him)를 위해 준비한 잔치 자리에”

목적어인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자리는 당연히 왕을 위한 잔치 자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에스더는 복선을 깔았다. 경우에 따라서 그(him)는 하만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왕이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지만, 에스더는 계속해서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자꾸만 연기하였다. 눈치 빠른 남자라면 알아차려야 한다. 


‘아! 이 여자에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구나. 왕비가 베푸는 잔치 자리면 당연히 왕과 그의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인데 왜 유독 하만을 불렀을까? 혹시 이 잔치가 하만을 위한 잔치가 아닐까? 내가 왕의 반지를 주어 하만을 최고 권력자로 세우니 하만에게 잘 보이려함일까?'


온갖 번잡한 생각이 들어야 당연하다. 에스더가 모호한 말로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하고서도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이유는 왕과 하만의 틈을 갈라놓기 위함이었다. 에스더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에스더는 남자를 다룰 줄 알았다. 에스더는 단순히 순종적인 여자가 아니었다. 에스더는 주체적으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여자였다. 


3. 세레스 


세레스는 하만의 부인이다. 그녀는 하만 만큼이나 악한 여자다. 그러나 하만보다는 지혜로웠다.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흔히 세레스는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성경은 하만의 부인 이름을 굳히 밝혔다. 하만의 부인이라고 해도 되는 데 왜 이름을 밝혔을까? 어쩌면 하만보다 세레스에게 주목하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세레스와 하만의 관계는 다정하다. 세레스는 두 번 등장하지만(에5:14, 6:13) 그녀는 매우 인상적이다. 하만은 궁중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 부인 세레스에게 다 이야기하였다.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 다음가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부인 세레스에게 지혜를 구하였다. 세레스의 조언은 하만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청량 수와 같았다. 모르드개를 죽일 계책을 내어서 하만의 기분을 풀어주는 모습은 마치 나봇의 포도원 때문에 고민하던 아합의 기분을 풀어준 이세벨이 연상된다. 세레스나 이세벨의 악함은 남편보다 위에 있다. 아무튼 그녀는 주도권을 가지고 남편을 이끌었다. 


세레스가 하만에게 두 번째 조언할 때는 마치 앞날을 예언하는 듯 보인다.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에6:13)

그녀는 상황 파악을 분명히 하였고 앞날에 대한 예측도 정확하였다. 비록 세레스가 악한 여자이긴 하지만 성경은 그녀를 지혜로운 여자로 인정하였다. 


에스더서에는 이처럼 세 명의 여자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남자들을 이끌어나간다. 고대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성이다. 에스더서를 낭송할 때마다 여성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여자가 되어야 할지 생각하였을 것이다. 성경은 약자의 책이고, 약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촉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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