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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19. 2017

고흐의 실수와 키에르케고어의 정답

행복론

미국 하버드 성인 개발 연구소에서 1938년부터 75년간 724명의 인생을 추적하며 행복에 대해 연구하였다. 참가자는 하버드 학생에서 보스턴 슬럼가의 소년까지 다양하였다. 참가자의 직업, 건강, 결혼과 가정생활, 사회적 성취, 친구 관계등 전반에 걸쳐 조사하였다. 참가자의 동의를 얻어 2년마다 방문조사 했는데 최초 연구 대상 중 60명이 생존해 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 참가자의 목표는 대부분 성공과 부와 명예였다. 그것들이 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75년간 축적한 수만 페이지짜리 인생 데이터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성인 개발 연구소 소장이며 하버드 대학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웰딩어(Robert Waldinger)의 결론은 간단하다. 좋은 인간관계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굳이 75년의 연구가 아니어도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행복을 성취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행복이란 일에 있지 않고, 성취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음을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는 일생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관계가 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관계의 양보다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맞는 친구, 생각이 통하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마침내 적절한 친구를 찾았다.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다. 두 사람은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서로 편지부터 교환했다. 5개월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면서 서로 자화상을 그려 보내기도 하였다. 비록 고갱이 5살 위였지만, 둘은 같은 인상파 화가에다 생각도 통하는 듯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예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1888년 10월 23일 두 사람은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 시골 아를(Arles)에 고흐가 사는 노란 집이었다. 1층은 작업실이었고 2층에 있는 방 두 개를 각자 사용했다. 처음 두 사람은 마음을 맞추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레스토랑 여주인 지누, 아를의 여인들, 도개교 아래 빨래하는 여인들, 아를의 포도원 등 아를의 모습을 함께 그렸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갱이 그려 준 고흐의 초상화

두 사람은 서로 초상화를 그려주었는데 고갱이 그려준 고흐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붓 같지도 않은 바늘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머리는 까져있고, 눈은 반쯤 감겨 흐리멍덩해 보였고, 수염이 있는 부분은 마치 원숭이 입처럼 그려놓았다. 그러면서도 고갱은 고흐에 대한 경의와 자신과 고흐의 우정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분명 조롱이었다. 적어도 고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 외로움 속에 살았던 고흐는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보면서도 늘 불안하였다. 반면에 자신을 천재로 생각했던 고갱은 자만심으로 가득하였다.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던 고갱은 시골 촌놈 같은 고흐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갱은 냉소적이며 성격이 강했고, 고흐는 격정적이었지만 내성적이었다. 고갱은 가톨릭이었고, 고흐는 개신교였다. 개성이 강하고 지기 싫어했던 두 사람은 마침내 충돌하였다. 늘 불안하고 격정적이었던 고흐가 한쪽 귀를 자르고 나타났다. 기겁한 고갱은 그길로 짐을 싸서 아를을 떠났다. 불과 두 달만인 1888년 12월 23일이었다. 좋은 관계가 행복인 줄 알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인생을 조금이라도 살아본 사람은 모두 공감하는 바다.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행복할 수 있을까?

“지혜로운 마음을 키우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냉철한 사고를 유지하면 훌륭한 삶을 얻을 것이다.” (잠언 19:8, 메시지 성경에서)

지혜자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남이 나를 사랑하여 주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구약의 성도들은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면 광야로 나아갔다. 이세벨에게 쫓기며 삶에 좌절을 느낀 엘리야는 무작정 광야로 나아갔다. 장인 사울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낀 다윗도 광야로 나아갔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그 메마른 광야에 왜 갔을까? 그들은 거기서 홀로 하나님 만나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좋아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였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40:3)

광야는 여호와를 만나는 장소이고, 여호와의 길과 뜻을 예비하는 장소다. 구약 성도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복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을 때, 홀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회복되고 행복함을 알았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 (막1:12) 예수님의 공생애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때로 식사할 시간도 없었고, 주무실 시간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틈만 나시면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3)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홀로 계시면서 회복하셨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들을 만나 교제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 (갈1:17) 거기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만나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가지라고 충고하였다. (딤전2:2)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경건한 성도들은 사막으로 나가 은거하였다. 그들은 복잡한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토니우스(251~356)를 필두로 많은 사람이 사막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뤼시앵 레뇨(Lucien Regnault, 1924~2003)는 이렇게 썼다.

“산속에 은거한 이 사람의 명성이 어떻게 스페인, 프랑스, 로마, 아프리카에까지 미칠 수 있었겠는가? 이 사람들은 숨어서 행동하고 감추어져 있기를 바랐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마치 횃불처럼 모두에게 드러내셨다.” (사막교부 이렇게 살았다, 뤼시앵 레뇨, 허성석 옮김, 분도 출판사, 2006년)


초대교회 사막교부들은 수도원 운동의 선구자였다. 중세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할 때 그나마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만드는 데 힘을 쏟은 곳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종교개혁자들에게 개혁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위대한 침묵

영화감독 필립 그로닝(Philip Gröning, 1959~)은 봉쇄 수도원에서 침묵하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수도사의 삶이 어떠한지 소개하고 싶었다. 말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은 과연 정상일까? 그는 알프스 산 속에 위치한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찾아가서 촬영을 부탁했다. 일반인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인데 영화촬영이라니 당연히 거절하였다. 필립 그로닝은 무려 20년 동안 수도원을 찾아가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다. 마침내 허가가 떨어졌지만, 조건은 까다로웠다. 조력자 없이 혼자 들어와 촬영해야 하며 인공조명은 허락되지 않았다. 필립 그로닝도 수도자처럼 침묵하여야 했다. 런닝 타임 3시간짜리 영화 ‘위대한 침묵’(Die Große Stille)은 말 그대로 침묵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정신이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상이고, 경건하고, 행복했다. 도리어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침묵 앞에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졸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개신교는 너무 시끄럽다. 침묵의 위대함이나 홀로 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회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듯하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30년간 파리 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의 신문사와 잡지사에 기자로 일한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 1938)는 60세 은퇴 후 심한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는 도피하듯 산티아고 가는 길 800km를 걸었다. 발이 부르트고 다리에 알이 배기면서 홀로 걸었던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홀로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는 회복하였다. 1999년 예순이 넘는 나이에 그는 실크로드 1만 2,000km를 고집스럽게 홀로 걸었다. 3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혼자 걷는 시간의 귀중함을 깨달았다. 그는 청소년 범죄자들을 수감하는 대신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하자고 프랑스 당국을 설득하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청소년들이 홀로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쇠이유(Seuil, 문턱)라는 단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기성세대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청소년, 사회에 부적응한 청소년,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청소년,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쇠이유를 통해서 회복되고 소생하였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기성 교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사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 헤매던 철학자였다. 그의 물음은 “참다운 나란 무엇일까?”였다. 그는 3단계 인간을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 감각이나 충동에 지배를 받는 감성적 단계로 ‘돈 후안’이다. 두 번째 도덕적 의무를 받아들이고 보편적 이성의 법칙을 따르는 윤리적 단계로 ‘소크라테스’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마주하는 단독자(den Enkelte)로서 신앙적 단계이며 대표적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은 지극히 고독한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진실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때이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경험을 통해서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사람이 된다.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누가 나를 사랑하느냐 마느냐에 흔들리지 않고 홀로 있음에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한다. 거기서 진정한 자기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된다.


기도실의 은밀한 고독은 이웃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이다. 홀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타자로부터 마음 문을 닫고 고독의 길을 걸어 본 사람만이 이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다른 사람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 자기 안에 행복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 사람만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터진 웅덩이 같은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세상 그 무엇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 관계에 집착하면 오히려 불행할 수 있다. 홀로서기에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다. 당신은 홀로 있어 행복한가?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 폴 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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