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솔로이스트를 보고서
아버지를 모시던 막냇동생이 교통사고로 하나님 나라에 갔다. 막내는 효자였다. 가기 전날 무심한 형에게 전화했다.
“부모님께 전화 좀 자주 해. 형 전화를 받으면 기뻐하셔.”
동생에게 그런 전화를 받고 나니 미안하고 무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그게 마지막 말일 줄 몰랐다. 동생이 그렇게 떠난 후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 그날부터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치매였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슨 소리를 해도 그냥 건성으로 받아넘겼다. 상황에 맞지 않는 소리, 논리적이지 않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난 귀를 닫아버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의식의 강이 생겼고 마침내 서로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 나는 아버지를 볼 때 불쌍한 마음뿐이었다.
치매에 걸리면 어떤 세계에 살게 되는 걸까? 가족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면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로 아버지 기억을 되살리려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어제까지 말이 잘 통하던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일까? 이 세상에 혼자만 남았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거리를 산책하다 갑자기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경찰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왔는 데, 집이 집 같지 않을 때 아버지는 어땠을까? 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마음과 생각과 정신세계를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솔로이스트(Soloist, 2009)를 보았다. LA 타임즈 기자 스티브 로페즈는 어느 날 우연히 공원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니엘을 만난다. 흑인 노숙자 나다나엘이 두 줄만 남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데 실력이 남달랐다. 스티브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두서없이 뇌까리는 말 속에 그가 줄리어드 음대 출신인 것을 알아낸다. 스티브는 좋은 기삿거리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접근했다.
나다나엘은 정신분열증으로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하였다. 나다나엘은 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을까?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을 통해서 인종차별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는 정상인과 다른 사고 구조를 가졌다. 그를 지켜준 것은 음악이었다. 원래 첼리스트였는데 어디서 주었는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 한 번도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없는 그였지만, 그의 천재성은 어떤 것으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다.
기사에 감동한 독자가 기증한 첼로를 주며 스티브는 나다나엘과 친구가 되었다. 정신분열증 노숙자 나다나엘과 잘나가는 기자이며 작가인 스티브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스티브는 수줍어하는 나다나엘 곁을 지켰다. 길바닥에 앉아서 그의 연주를 듣고, 그가 누워 자는 자리에서 함께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건널 수 없었던 것 같은 의식의 강을 건너 둘은 친구가 되었다.
나다나엘의 첼로 실력은 놀라웠다. 그의 재능을 살려주고 싶은 마음에 스티브는 연주 계획도 세우고 치료 계획도 세운다.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으면, 정상인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말도 잘 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자신을 정신병동에 넣으려는 계획을 알아차린 나다나엘은 스티브에게 폭행을 가하였다.
도움을 주려고 했던 스티브는 좌절하고 눈물 흘린다. 단지 도와주려 했는데. 단지 나와 같은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단지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마침내 스티브는 깨닫는다. 나다나엘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고,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자신을 묵묵히 바라봐주는 친구가 필요했다. 같은 생각을 하여야 정상이 아니다. 대화가 통해야만 정상이 아니다. 때때로 말이 통하지 않고, 사고구조가 다르고, 행동이 남달라도, 그의 곁을 지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스티브 로페즈는 지금도 LA타임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다나엘은 노숙자 공동체인 Lamp Community에서 봉사하며 연주하고 있다. 둘은 여전히 좋은 친구다.
토마스 머튼은 말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정신이 멀쩡한'(sane)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옳은 정신'(right mind)을 가진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영적인 가치들이 그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멀쩡한 정신(san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세상 나라에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 나라와 소통하려고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세상 나라와 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정상일까? 무엇이 세상 나라의 사고방식인지,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사고방식인지 구별 못 하는 우리는 정상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물에 함께 울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상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