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베 동굴 벽화 이야기
1994년 12월 장 마리 쇼베라는 프랑스 지방 공무원이 동굴을 발견했다. 아비뇽 근처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었다. 2만 년 전 암벽 붕괴로 폐쇄된 동굴이 마침내 신비의 문을 열었다. 동굴에는 구석기인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1,000여 점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체 보존되어 있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3만 2,000년 전의 그림이라고 한다. 이 동굴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쇼베-퐁다르크 동굴(Chauvet-Pont-d'Arc Cave)라고 하였다. 동굴 벽에는 12가지 동물이 그려져있다. 지금은 멸종한 유럽의 들소(aurochs)와 매머드를 비롯해서 사자, 곰, 사슴, 코뿔소, 하이에나, 표범, 올빼미 등이다. 동물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 자국이나 발자국들, 상징적인 기호 등도 그려져 있었다. 물감의 재료는 황토, 숯, 적철광 등 자연 염료를 사용하여 다채로운 표현을 하였다. 검은색, 붉은색, 황토색 등을 손으로 발랐다. 15세기 마사초(Masaccio, 1401~1428)가 처음 사용했던 원근법을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으며 동굴 벽의 굴곡을 이용하여 동물의 움직임을 3차원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구석기인들은 왜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그들이 그린 그림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3만 2천 년 전이면 빙하기 시대였다. 벽화는 최초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인류라고 평가받는 크로마뇽인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크로마뇽인은 시체를 매장했으며, 시체의 얼굴에 빨간 안료를 칠하는 등 종교적 의식을 치른 흔적도 발견된다. 그리고 천체의 운동과 달의 위치 등도 기록하였다. 고 인류학자 오스본(Henry F Osborn, 1857~1935)은 “크로마뇽인은 우리와 꼭 같은 존재이며 그들은 뛰어난 용사이자 사냥꾼이었고 화가였으며 조각가였다”고 하였다.
크로마뇽인은 왜 벽화를 그렸을까? 그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벽화를 그렸을까? 벽화의 소재가 된 동물은 반드시 먹을 수 있는 동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먹고 살기 위하여 그렸다고 할 수 없다. 프랑스의 벽화 전문가 J.클로트는 주술적인 의식을 위하여 그렸다고 추정한다. 그럴 수도 있다. 쇼베 동굴은 입구가 좁아 접근이 어렵고 동굴 내부는 자연 채광이 가능하지도 않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 며칠씩 머물며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정말 제의적인 의식, 종교적인 의식 때문에 그림을 그렸을까? 3만 2천 년 전 크로마뇽인에게 종교가 있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해서 종교를 가지게 되었을까? 제한된 자료를 가지고 수만 년 전 인류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구석기인이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하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 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가, 왜 춤을 추게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처럼 예술의 기원을 묻는 일이다. 종교가 먼저 생겨서 제의적인 차원에서 그림과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도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종교의 발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림을 보면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손바닥 그림이다.
손바닥 그림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낙관을 찍어 그림이 완성되었음과 자신이 그렸음을 표현한다. 사실 중국에서도 고대에는 낙관이 없었다. 당나라 이전에는 작은 글씨로 작가의 이름을 쓰는 경우가 간혹 등장하였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작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원나라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편화하였다. 그만큼 화가의 지위는 높지 않았고, 자의식 또한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3만 2천 년 전 그림 속에 자신의 손바닥과 발바닥을 그린 것은 그들이 자의식으로 충만했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인들은 단순히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누구의 작품인지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횃불을 들고 홀연히 깊고 어두운 동굴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제사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들어갔던지, 아니면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서 들어갔든지 그들은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에게 몰두하였다. 우주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신비,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는 왜 사는가? 죽음 후에 삶은 있는가? 사람에게 혹은 동물에게 영혼은 있는가? 그들은 본질적인 질문을 하였고 그 답으로 그림을 그렸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기에 위대하다고 했는데 구석기인은 생각을 하였다. 비록 우리가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들의 문법대로 그림을 그려 자신을 표현하였다.
인간이 인간 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 요인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저 공상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였다. 인간은 자기표현을 위하여 그림 언어를 발전시켰고 그것이 후일 문자가 되었다. 생각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고등한 인간의 첫발자국이다.
현대인 중에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설령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린다 할지라도 생각이 없고, 표현이 없는 사람은 구석기인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주변 사람에게 글을 쓰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아무튼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표현해 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개중에 ‘글쓰기가 밥 먹여 주냐?’라고 말한다. 난 그런 사람에게 쇼베 동굴의 그림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자기표현이 없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 동물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