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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01. 2017

시크와 시니컬

시크(chic)와 시니컬(cynical)의 차이를 아세요? 한국말 발음이 비슷하니까 비슷한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본래 ‘시크’란 패션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였습니다. ‘세련된, 멋진, 맵시 나는’이란 뜻을 가진 독일어 쉬크(Schick)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모델들이 도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무표정하게 포즈를 잡는 데서 ‘시크하다’ 는 말을 하였는데, 그것이 널리 퍼진 것입니다.

반면에 시니컬이란 말은 ‘개 같은’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시니코스(Cynico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개 같은’이란 말이 욕설처럼 들리긴 하지만 이 말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애완견을 별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개를 길거리에 방치하였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 음식 쓰레기를 먹 살았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가 길거리의 개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도 일년 가야 목욕 한 번 하지 않는 거지 같은 삶을 살기는 했지만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매우 소식했고, 그런데도 그가 전적으로 남의 도움 없이 살았으며, 또 그는 자신의 모든 쾌락을 엄격하게 근절했다.”


안티스테네스는 소크라테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흔히 견유학파(Cynicism)라고 하였습니다. 이 명칭은 개를 뜻하는 그리스어(Kyon)에서 유래하였는데 그들은 올이 성긴 외투를 입었고, 구걸을 위한 부대와 지팡이를 지니고 다녔습니다. 긴 머리와 맨발로 혹독한 겨울 날씨를 견뎌냈지요. 그들은 인간의 모든 겉치레에 대하여 조소를 퍼붓는 것으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부자들이나 존경받는 자들을 비롯해서 허세를 부리는 모든 사람에게 마치 개처럼 짖어댔지요. 현 사회는 부패하고 무가치하며 인간으로서 최선의 길은 자신의 삶 전체를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재평가하였느냐구요?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단순하고 가난한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했어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잘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은 다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조롱하였지요. 안티스테네스는 ‘현명한 사람은 자족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안티스테네스의 제자로 유명한 사람이 디오게네스(Diogenes, BC 400?~BC 323?)입니다. 그는 둥근 나무통에 들어가 살았으며,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찾는다고 외쳤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직접 찾아와 소원이 무어냐고 물었지요.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는 정말 시니컬했습니다. 왕이든 누구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를 개 취급하여 뼈다귀를 던졌을 때 디오게네스는 그 뼈다귀들을 받아먹는 개 흉내를 내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그는 세상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현대판 니체라고 할 수 있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길거리 개처럼 떠도는 견유학파의 삶을 살면 행복할까요? 반대로 엄청난 돈을 가진 대기업 회장이 되면 행복할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치고 감옥을 들락날락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돈 많은 것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행복할까요? 얼마 전 ‘지정 생존자(desinated survivor)’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보았지요. 올가을에 시즌 2가 방영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불행한 사태를 대비하여 미국 대통령을 계승할 사람을 한 명 남겨두는 데 그가 지정 생존자입니다.  연두교서나, 대통령 취임식 등 대통령과 상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를 할 때 ‘지정 생존자’를 지명합니다. 영화니까 가능하겠지만,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중에 테러가 일어나서 모든 국무위원과 상하의원이 다 죽습니다. 딱 한 명, 미합중국 내각 각료 중 최하위에 자리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만만 남습니다. 그가 바로 ‘지정 생존자’지요.


톰 커크만 역은 미드 ‘24시’의 주인공을 했던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가 했지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입니다. 톰 커크만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선거에 출마해 본적도 한번 없는 대학교수 출신 장관입니다. 더욱이 연두교서를 발표하기 바로 전날 대통령은 그에게 해임통보를 합니다. ‘지정생존자’가 장관으로서 마지막 역할이었는데 덜커덕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국민은 그를 미덥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무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미시간 주지사가 시민 보호를 핑계로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코크렌 장군은 반역을 모의합니다. 주변에 모든 사람이 그를 흔드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름뿐인 대통령이긴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통령의 명령은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밤잠도 반납하고 혼란 속에 빠진 국정을 바로 잡으려 애를 써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마저 포기하면 미국은 정말 대혼란에 빠져들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얼빠진 지도자, 무능한 지도자, 최악의 반대 상황에 부닥친 지도자인 톰 커크만이 문제를 하나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톰 커크만이 정말 시크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멋진 대통령으로 거듭납니다.


행복은 무엇일까요? 견유학파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면 행복할까요? 부패한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동안 돈 있고 권세 있다고 유세부리던 사람들을 시니컬하게 비웃으면서 개처럼 짖어대면 행복할까요? 세상은 모두 썩었다. 사람들은 모두 악하다. 부자나 존경받는 사람이나 아등바등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 행복할까요?


전 ‘지정 생존자’를 보면서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사람이 멋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친구 중에 어렵게 맡은 큰일을 ‘에이 내가 이곳 아니면 갈 데 없는 줄 알아! 너 같은 놈하고 일하느니 차라리 맨바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겠다.” 하면서 떠나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훌훌 털고 자유롭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유가 아니라 도피입니다.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요? 이리 봐도 답답하고 저리 봐도 답답한 것뿐이지요. 사실 이 세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아요. 언제고 우리를 흔들어 놓고 괴롭게 하려고 하지요. 돈, 명예, 권세, 조직, 사람, 친구, 친척, 가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큰 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성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저는 이 동네를 잘 모르는 데 이곳 인심은 어떻습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 낯선 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살던 곳은 어땠나?”

“예. 제가 살던 곳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래서 그곳을 떠나 이곳에 왔지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일세.”

그 낯선 이는 크게 실망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잠시 후, 다른 이방인이 와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똑같이 물었습니다.

“자네가 살던 곳 사람들은 어떠했나?”

“예.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요. 그들과 헤어져야 해서 마음이 몹시 아팠지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세.”

그 낯선 이는 아주 기뻐하며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노인을 지켜보던 상인이 말했습니다.

“아니 어르신 두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왜 답은 다르게 하셨습니까?”

노인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자기 세상이 있는 법이지. 우리가 보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의 세상 아닌가. 이 동네에서 불행한 사람은 세상 어느 동네를 가도 불행한 법이네.”


행복은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무시하고 외면해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결코 흔들 수 없습니다. 톰 커크만은 환경인 사람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


바울 사도는 돈이나 환경이나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 사람들에게 받지 못할 대우를 받았습니다. 모욕과 멸시, 채찍과 욕설, 배신과 가난. 그는 고꾸라질 것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습니다. 전 그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참고도서

1. 프레데릭 르누아르, '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이세진 옮김 (서울; 와이즈베리, 2016)

2. N.T.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박문재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3. 마르틴 헹겔, '부와 재산', 송영의 옮김 (서울 ; 지평서원, 1993)

4. 알리스터 맥그래스, 조애나 맥그래스, '자존감', 윤종석 옮김 (서울 : IVP,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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