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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29. 2017

설교자의 유혹 - 설교 카피

훌륭한 설교자는 언제나 훌륭한 나의 스승이다. 그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나는 그리 생각한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훌륭한 설교자를 만나면, 언제나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대학원 다닐 때 홍정길 목사가 시무하던 남서울 은혜교회에서 데니스 레인 강해 설교 세미나를 하였다. 사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978년 대학을 입학해서 1988년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한 해도 정상적으로 공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데모로 시작해서 휴교로 끝났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던 그 시절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공부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걸 광야 신학이라고 불렀다.


수천 명이 모여서 데니스 레인 목사의 강해 설교법을 듣는 데, 나는 감탄을 거듭하였다. '그래 설교를 하려면 저렇게 해야 해.' 나는 그의 설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발전하였는지 궁금하였다. 쉬는 시간 용기를 내어 데니스 레인 목사를 찾아가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은 처음부터 이렇게 강해 설교를 하셨어요?”

“예.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데니스 레인 목사의 대답에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목사님에게서 배울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목사님이 처음에는 저희처럼 설교를 잘하지 못하다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성숙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면 저도 배울 것이 있을 듯싶습니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잘 하셨다면 전 배울 것이 없을 듯싶습니다.”

실망한 나에게 데니스 레인 목사는 말하였다.

“나는 훌륭한 목사님을 만났어요. 어려서부터 내가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설교를 이렇게 하셨거든요.

나는 설교란 저렇게 하는가 보다 했어요. 보고 들은 게 그것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데니스 레인 목사가 신앙생활 하던 영국 교회가 너무 부러웠다. '설교는 설교로 배워야 한다.' 나의 멘토이신 정근두 목사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왜 한국 교회에는 제대로 된 강해 설교자가 없는 것일까? 안타까웠다. 그 후 훌륭한 설교자를 찾는 탐사 여행이 시작되었다.


국내외 유명하다는 목사의 설교를 찾아서 읽고 듣기 시작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설교 테이프를 정기 구독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전자제품은 소니 워크맨이나 아이와 (AIWA) 카세트 레코더였다. 작은 워크맨으로 듣는 유명 목사의 설교는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전도사 시절 그들의 설교를 흉내도 내보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외국 서적도 많이 번역되었다. 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습관적으로 자료를 정리했다. 컴퓨터가 나오면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요즘도 매일 아침 자료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언젠가 같은 본문의 설교를 여러 설교자가 어떻게 했나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존경하던 목사님들 중 여러명이 외국 설교자의 설교를 그대로 카피했다는 사실이다. 그뿐 아니었다. 국내 유명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카피해서 하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대학을 다닐 때부터 로이드 존스 목사를 좋아해서 그의 설교를 애독하였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목회 초기를 빼고 늘 원고 없이 90분간 설교하였다. 전도사 시절 정근두 목사로부터 로이드 존스 설교를 분석 연구하는 법을 배웠다. 만일 로이드 존스 목사가 원고를 한 장 가지고 설교단에 올라갔다면 어떻게 썼을까? 그의 설교집을 읽고 역으로 한 장짜리 원고 만드는 법을 훈련받았다. 나는 그 방법대로 매일같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를 요약하였다. 첫 번째는 은혜받기 위해 읽었고, 두 번째는 분석하기 위해 읽었고, 세 번째는 요약하며 다시 읽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니까 어떤 본문을 읽더라도 로이드 존스 목사는 어떻게 설교하였을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후일 목회하면서 가끔 로이드 존스 설교 요약문 한 장 들고 올라가 설교를 한 적도 있었다. 좋은 설교자가 나타나면 로이드 존스 목사 설교를 연구하던 방법을 따라서 그의 설교를 연구하였다.


처음에는 좋았던 설교자가 계속해서 그의 설교만 읽고 연구하다 보면 그의 한계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졸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미련 없이 그를 떠났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스펄젼이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훌륭한 설교를 하려면 훌륭한 설교를 많이 읽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기독교 2,000년 역사는 지식을 축적한 결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이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2,000년 동안 연구하고 설교한 지식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까지 왔다. 앞선 위대한 신학자, 설교자의 글을 읽다 보면, 똑똑하다고 생각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훌륭한 설교는 좋은 교과서다. 내가 아무리 실력과 영적 능력이 뛰어나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깊이와 넓이와 폭을 갖춘 분들이 너무 많다.

요즘 내가 은혜받는 설교자 한 분이 있다. 가끔 유튜브를 통하여 그분 설교를 들으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이 찾아온다. 이 설교를 그대로 카피해서 우리 교인에게 들려주고 싶다. 남의 꼴이라도 가져다가 우리 교에게 먹이고 싶은 욕심이 들어온다. 이런 마음이 나쁜 마음일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 주일이 코앞에 닥치면 유혹은 더 강렬해진다. 그래도 카피는 안된다. 차라리 잘 이해하고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든 뒤 전하는 것이 설교자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손쉽게 남의 설교를 그대로 카피해 오면 결국 설교자는 게을러지고, 양심은 무뎌지고, 사역은 무너진다.


얼마 전 동네 가까운 교회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였다. 흔치 않은 일이고 좋은 일도 아니어서 처음엔 경계하였다. 무슨 연유로 교회를 옮기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었지만 통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야 그 교회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담임목사가 수년 동안 설교를 표절해 온 것이 알려져 큰문제가 되었다. 인터넷의 위력이 놀랍기만 하다. 유명 목사의 설교는 유튜브롤 통해 언제든 들을 수 있다. 교인들의 귀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적당히 남의 설교를 카피하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 생각은 오산이다. 자기만 모를 뿐이 교인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목사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목사가 살 길은 점점 사라져 간다.


교회는 목사의 실력보다 더 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교인들의 귀도 커지고, 실력도 커 가는데 목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한다면 언젠가 한국 교회는 크게 무너질 것이다. 아니 벌써 무너지고 있다. 오늘 점심을 마치고 교회 교역자들과  Tea Times을 가지면서 내가 요즘 은혜받고 있는 설교자를 소개해주고 함께 설교를 들었다. 그분의 설교를 잠시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그분의 설교로 인해서 유혹받지 않고 교훈만 받기 위한 나만의 다짐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하면서 가졌던 마음처럼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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