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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31. 2017

죄송합니다.

요즘 JTBC에서 ‘더 패키지’란 드라마를 방영한다. 주인공인 산마루는 제약회사원이다. 그는 회사의 비리를 직장 상사에게 보고했다가 오히려 공격을 받고 그날로 휴가를 내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 여행 중 가이드인 소소와 대화를 나누었다.


소소 : “용감하네요. 그 상황에서 휴가를 오고.”

마루 : “도망친건지도 모르죠.”

소소 :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요. 가면 뭐가 달라져요?” (여행 일정을 마치지도 않고 돌아가려는 마루에게 하는 말)

마루 : “무단결근은 안되겠지요?”

소소 : “휴가는 회사에서 주는 혜택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요. 그걸 포기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거 아닌가요?”

마루 : (직장 동료인 여자 친구의 말을 연상하면서) “그렇게 멋지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장면 전환)

여자친구 : (마루의 내부 고발을 막으려고 함) “그런데 나, 미래를 포기한 사람하고는 함께 못해.” (장면 전환)

소소 : “뭐가요?”

마루 :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그러잖아요. 놀 것 다 놀고 쉴 것 다 쉬면 미래가 없다고. 그런데 소소 씨는 다르게 이야기하니까. 일만 하면 미래가 없다니까.”

소소 : “회사의 미래는 있겠지요. 근데 참 이상해요. 회사가 나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만 하지. 내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은 안 해요. 왜 그럴까요?”

마루 : “회사는 아무리 먹여 주어도 배부르단 소리를 안 하니까.”

소소 : “묘해요. 회사는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게 배신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그래도 확실한 건 마루 씨 잘못한 것 없어요.”

마루 :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처음인데요.”

소소 : “진짜 잘했어요. 그러니까 죄지은 사람 끌려가듯 돌아가지 마요.”


우연히 드라마의 한 토막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던 기성세대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마루가 이야기하는 대로 “놀 것 다 놀고 쉴 것 다 쉬면 미래가 없다.”는 말은 기성세대가 하던 말이다. 회사는 나의 모든 재능, 지식, 정열, 시간, 마음을 온전히 쏟아 놓기를 원한다. 가능하다면 휴가도 반납하고, 공휴일에도 회사에 나와서 헌신하기를 요구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회사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회사를 먹여 살리는 것도 나다. 휴가를 포기하는 것은 나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휴식을 포기하고 나의 전부를 바쳐 희생하면, 어느 순간 빈껍데기만 남는다. 요즘 회사는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사원들의 복지와 노후에 상당한 투자를 하며 신경을 쓴다. 휴가도 법으로 정하여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었다. 재교육도 매년 실시해서 번아웃(Burn out)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직원의 미래보다 회사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변함없다.

부교역자 시절 나는 교구 담당 목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30년 전 사역하던 교회 교구 담당 목사는 매일 아침 심방보고서를 썼다. 그날 심방할 교인들을 시간대 별로 미리 보고 해야 했다. 혹시라도 빈 시간이 있으면, 교회는 교역자들이 논다고 생각하였다. 목회자들은 틈만 나면 노는 줄 생각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일과가 끝나면 그날 심방 내용을 보고하는 데 왜 그 집을 찾아갔는지 이유를 써야 했다. 매일 같이 아침저녁으로 써야 하는 보고서 때문에 교구 담당 목사는 죽는소리를 했다.


가끔 심방 약속이 취소되는 경우 교역자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급하게 심방 약속을 잡느라 전전긍긍이었다. 퇴근한 후에는 다음 날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붙잡고 교인들에게 통사정하였다. 제발 심방 좀 받아 달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일도 없는 데 심방 받겠다는 교인은 많지 않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자기 일이 있고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교구 담당 목사는 독서는커녕 성경 읽을 시간도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교구 담당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후 내 동기 목사가 분당에서 교회를 크게 짓고 성공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부러워했다. 언젠가 그 교회 부 교역자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게 되었을 때, 비로서 나는 동기 목사의 목회를 알게 되었다. 그 교회는 모든 부교역자의 사례비를 성과급으로 하였다. 교구마다 출석률과 재적인원의 변동에 따라 성과급을 주었다. 교회에 혹시 스스로 등록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교구 실적 올리기에 혈안인 교역자들은 싸우고 난리였다. 그 교회의 통계는 허수가 많았다. 자기 교구의 인원이 줄었다고 보고하면 사례비가 깎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고하는 출석률, 재적 인원은 모두 허수였다. 교인이 교회를 떠난 지 십 년이 지났는데도 교회 교적에는 여전히 교인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교회는 예배당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교인 출석을 체크한다. CCTV 영상을 보면서 수천 명 되는 교인의 얼굴을 일일이 점검한다. 때로 누구인지 불분명할 경우는 교구 담당 부교역자에게 캡쳐한 사진을 보내어 확인한다. 부교역자는 주일이 지나면 쉬지도 못하고 눈이 빠져라 영상만 쳐다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악덕 기업보다 더 심하게 교역자들을 괴롭힌다. 행정 체계를 잡는다는 핑계로 교역자의 숨통을 움켜쥐고 숨도 못 쉬게 한다. 목회자들이 책을 읽고 정신적 여유를 가져야 훌륭한 설교가 나오는 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놀지 말고 열심히 교인을 돌아보고, 분명한 성과를 올리고, 각종 보고서를 써서 행정 체계를 갖추고, 조직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요구한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할 뿐 아니라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지식을 다 쏟아놓으라고 요구한다. 부교육자 1년만 하면 내놓을 열정도 지식도 다 사라져 버리고 빈 껍데기만 남는 게 한국 교회 현실이다.


목사들 재교육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 교회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 한다. 교역자의 복지와 노후에 대해서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무조건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고 가난을 기쁨으로 여기라고 한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썩었다고 비방하는 데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썩지 않도록 끊임없이 재교육시키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하면서 썩지 말라고 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담임 목회를 하는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함께 일하는 부교역자들 보기에 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영적으로 충분히 충전할 수 있도록 재교육도 하고, 여유 있는 휴식을 통하여 다시 힘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주어야 하는 데 그리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담임목사로서 언제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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