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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18. 2017

에스더를 새롭게 읽기

에스더 서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랑하던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무차별로 침략하고 수탈하였다. 1885년 인도를 점령한 영국은 미얀마(버마)도 인도의 한 주로 통합하였다. 그렇게 인도로 편입한 지역은 현재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로 분리 독립하였다. 지금은 국경이 나누어졌지만, 당시 영국은 편리하게 통치하려고 강제로 하나 되게 하였다.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데 그들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까? 넓은 곡창지대를 가진 미얀마를 쌀 생산기지로 만들어 수탈하려고 했던 영국의 정책에 미야만인들은 거세게 저항하였다. 


영국은 인도의 벵골지역(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벵골인(방글라데시인)들을 미얀마로 강제 이주시켜 미얀마인들을 관리하였다. 마치 일제하에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착취하고 수탈하던 일본 순사나 관리들과 같았다. 미얀마인들은 영국인도 밉지만, 벵골인(로힝야족)이 훨씬 더 미웠다. 이슬람을 믿는 로힝야족은 불교도인 미얀마족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가혹하게 대했으며 영국인보다 더 심하게 착취하였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그동안 영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얀마를 수탈하던 벵골인(로힝야족)은 당연히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했다. 많은 사람이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60년 넘게 미얀마에서 터를 잡고 부를 축적한 로힝야족 일부는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오히려 자치권을 요구하였다. 제국주의가 남겨 놓은 분쟁의 씨앗은 미얀마에서 참혹한 인종 갈등, 종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로힝야족을 본격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조국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방글라데시는 국경을 막았고, 미얀마는 로힝야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무국적자가 된 로힝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군부 독재하에서 인권운동을 한 아웅산 수치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고 2015년 총선에 승리함으로 군부 집권을 종식하였다. 아웅산 수치가 정권을 잡자 그동안 억눌렸던 욕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한 단계도 아닌데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었다. 


정권을 빼앗긴 군부는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의 약점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반군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군부는 로힝야족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아직 군부까지 통제할 힘이 없는 아웅산 수치는 쳐다만 볼 수밖에 없다. 로힝야족에 대한 강력한 반감이 있는 국민 정서상 아웅산 수치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인권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아웅산 수치는 인권을 외면한 지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 이제 미얀마 군부가 차기 정권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다. 

이스라엘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이스라엘인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인에게 고레스의 조서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꿈에도 그리는 고향, 하나님이 계시는 예루살렘에 돌아갈 생각에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있는 재산을 다 처분하고 수천만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그들은 떠났다. 신앙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민족적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부와 명예를 쌓아서 페르시아에 웬만큼 터를 잡은 유대인들이었다. 신앙보다, 민족의식보다 세상에서 쌓아놓은 부와 명예가 더 소중하였다. 앞집, 뒷집, 옆집 사람 모두 떠나도 이방 땅, 불신 세상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남아 있던 사람들 이야기가 에스더서에 기록되었다. 


흔히 에스더 하면 신앙이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딸을 낳으면 에스더란 이름을 짓는 교인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에스더란 이름은 좋은 뜻이 아니다. ‘별’이란 뜻을 가진 에스더는 바빌론의 여신 이슈타르(Ishtar)에서 연유하였다.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인데 ‘도금양나무’라는 뜻이다. 에스더는 히브리 이름 대신 페르시아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것도 이방 여신의 이름을 따랐다. 


실지로 에스더서를 살펴보면 단 한 차례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 즉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나 야웨, 엘, 엘로힘, 엘샤다이 등 구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 중 그 어느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율법이나 안식일을 지켰다는 기록도 없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위기에 처하면 기도하는 데, 에스더서에는 기도했다는 기록도 없다. 기껏 하는 것이 금식이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에4:16) 


오히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방 왕과 결혼하도록 부추겼다. 할례받지도 않은 이방인에다가 이혼까지 한 왕의 부인이 되기 위해 결혼 전에 성관계까지 갖도록 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에2:14,15) 모르드개 역시 행동에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왕궁의 관리로서 마땅히 상급자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한 예절이다. 그러나 그는 하만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함으로 유대인 전체가 죽는 위기를 겪게 된다. 사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왕에게 충성을 다하여 그를 암살하려는 자를 밀고까지 하던 자였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든 성경적으로 보든 아하수에로 왕은 악한 왕이지 좋은 왕은 아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기 싫어하였다면, 아하수에로에게도 충성을 바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악한 아하수에로에게는 충성하고, 상급자 하만에게는 절하지 않았을까? 유대인 전체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중차대한 일이 있었는가?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나는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다. 오죽하면 마틴 루터는 에스더서는 차라리 쓰여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였을까!


에스더는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하던 여인이 아니었다. 모르드개 역시 악한 권세 앞에서 어떻게 하면 명예와 권세를 얻을까 힘썼지 신앙으로 바로 살려고 힘쓰지 않았다.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거부한 것과 같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페르시아에 남은 유대인 모두는 에스더나 모르드개 같은 사람들이다. 세속의 부와 명예와 권세가 훨씬 더 중요한 그저 그런 신앙인들이다. 위기에 부딪혀도 기도할 줄 모르는 신앙인들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은 생각도 안하는 사람들이다. 


수천만 리 떨어진 이방 나라, 불의와 부정과 부패함으로 가득한 우상숭배의 나라에 사는 나이롱 신자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의 백성을 기억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다니엘과 같이 훌륭한 신앙인에게만 함께하실까? 에스더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신앙이 변변치 않은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개독교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는 대한민국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잘한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도 잘난척하며 세상을 향하여만 손가락질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에스더서는 그에 대한 고민과 대답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에스더서는 새롭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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