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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7. 2017

아하수에로

에스더 이야기 2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영웅들을 다스리는 자”라는 뜻이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쓴 헤로도토스는 아하수에로의 이름을 크세르크세스라고 하였다. 사실 아하수에로도 원래 이름은 아니다. 원래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크샤야르샤(Khshayarsha)인데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아하수에로(Ahasuerus)이고 헬라어로는 크세르크세스이다.


아하수에로는 아버지 다리오 왕이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정복을 꿈을 가졌다. BC490년 다리오 왕은 그리스를 침공했다가 마라톤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10년이 지난 BC480년 아하수에로는 다시 그리스를 공격하였다. 지난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아하수에로는 3년 동안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는 페르시아 전역에서 무려 170만 명의 군인을 동원하였다. 페르시아 대군이 공격한다는 소식에 그리스는 전열을 정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용사와 함께 테르모필레(Thermopylae)라는 곳에서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략을 짰다. 테르모필레는 마케도니아 해안에 위치한 좁은 골짜기로 그리스로 가자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역이다. 그곳은 폭이 좁은 길목으로, 겨우 수레 하나 지나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서쪽으로는 높고 험준한 산이 멀리 오이테산까지 이어졌고, 동쪽으로는 모두 소택지였다. 스파르타 300명의 용사는 전원이 전사하면서 페르시아 대군을 저지하므로 그리스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이 전투는 300이라는 제목으로 여러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결국 살라미스(Salamis) 해전에서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대패하였다. 아하수에로는 그리스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궁으로 돌아가 하렘을 짓고 주색에 빠져 살다가 후궁들의 암투에 살해당하여 죽고 만다.

페르시아와 전쟁의 격랑 속에 태어난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사를 썼다. 그는 아하수에로를 성급하고 신경질적이며 호색한이라고 평하였다. 자기 나라를 침략한 적국의 왕이기 때문에 편파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하수에로의 아버지 다리오 왕도 그리스를 침략하였지만 다리오에 대해서는 온유하고 선하며 페르시아 제국을 정비한 왕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의 평가는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다고 보인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사를 쓰기 위하여 이집트, 흑해 연안,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트라키아 등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지형과 풍속과 구전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그가 쓴 페르시아 전쟁사는 당대의 역사를 총망라한 역사서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당시 존재하던 20여 개국의 민족과 생활 모습, 사회상을 자세히 묘사하므로 백과사전적 사료로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그의 책은 역사적, 문학적인 가치가 뛰어나며 역사학계에 가장 위대한 역사책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2009년 천병희 씨가 번역한 ‘역사’(도서출판 숲)와 2008년 강은영 씨가 번역한 ‘페르시아 전쟁사’(시그마북스) 두 권이 있다. 천병희 씨 번역본은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지만 고어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읽기가 불편한 반면, 강은영 씨가 번역한 페르시아 전쟁사는 이야기 형태로 읽기 편하다. 에스더 서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다만 그 양이 워낙 많아 좀 부담스러운 감이 있긴 하다. (강은영의 페르시아 전쟁사 - 447쪽, 천병희의 역사 - 994쪽)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마지막 부분에서 아하수에로가 얼마나 호색한인지를 밝히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그는 친동생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사랑하여 그녀를 취하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마시스테스의 딸인 아르타윈테와 자기 아들 다레이오스를 결혼시키므로 동생의 아내를 쉽게 유혹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며느리 아르타윈테를 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어 며느리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불륜을 저질렀다. 결국, 가정이 풍비박산되는 이야기로 페르시아 전쟁사는 끝을 맺는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바라본 아하수에로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에스더 서를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에스더 서는 아하수에로가 벌인 대규모 잔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성경학자는 에스더 1장을 왜 기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에스더 1장은 아하수에로와 그의 부하들이 술을 진탕 마신 후 술주정하다 아내 와스디를 폐위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서론에 기록한 까닭은 아하수에로의 성품과 역사적 정황을 이해하도록 함 이외에는 별 뜻이 없어 보인다.


그가 재위한 지 3년(에1:3)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하여 전쟁 준비를 마무리한 후 향연을 배설하였다. 그 향연은 무려 6개월 동안 지속하였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왕인지를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에1:4) 그는 귀천 간의 모든 백성에게 술을 마시게 하였다.(에1:5) 그것도 금잔으로 술을 마시게 함으로 자신의 부유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에1:7) 이 향연의 핵심은 술이다. 부어라. 마셔라. 취하자. 이런 와중에 아하수에로는 자신이 얼마나 관용적인지 보여주려고 엉뚱한 법령을 발표한다. 왕이 내리는 어주를 억지로 마시게 하지 않고 각자 마음대로 하게 하였다. (에1:8) 전제 군주가 내리는 어주를 마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 법령대로 관용을 베풀까? 자신이 얼마나 너그럽고 관용을 베푸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왕비 와스디가 자기 말을 듣지 않자 폐위시키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가 귀천을 무론하여 모든 백성에게 술을 나누어 주는 것은 인기를 얻고자 하는 목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백성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왕이고, 술이라도 퍼먹여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었던 왕이다. 그에게 있는 리더십이란 전제 독재 군주의 욕심일 뿐이지 참된 리더십은 아니다.


그가 왕비 와스디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 연회에 나오라고 했을 때 그의 모든 체면과 자존심은 완전히 구겨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왜 잔치에 나오지 않았을까?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가 당할 화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일부 사람은 왕이 부인을 누드로 나오게 했기 때문에 와스디가 거절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페르시아 상황을 전혀 모르는 무식한 말이다.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를 읽어보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시 왕비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자기의 권세를 가지고 때로 왕과 갈등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누드로 신하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은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역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에스더 서를 전개하는 데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하수에로는 격노하였고 그의 눈치만 살피던 신하들은(에1:14)은 왕비를 폐위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당시 왕비는 한 명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여자를 왕비로 삼았는데 아마도 와스디가 왕비 중에 가장 예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에스더 1장을 왜 기록하였을까? 구약학자 폰 라드(G. Von Rad)는 역사와 계시의 연관성으로 이 부분을 풀어나간다. “역사는 계시의 사건 없이 생기지 않고, 계시는 역사적 바탕을 떠나서 있지 않다.”  계시의 역사 즉 성경의 기록은 역사성이 없는 허구의 문학 작품이지 않다. 객관적인 역사와 신앙적 역사는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록 페르시아와 같이 불신 세상이고 악한 왕이 다스리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믿는 사람들도 제대로 된 신앙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외면하시지 않는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하나님은 불신 세계라고 외면하지 않으신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고 욕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미워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멸망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돌아와 하나님 은혜 안에서 복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페르시아에서도 역사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도 역사하실 것이라 믿는다.


참고도서

1. 헤로도토스, '역사', 천병희 옮김 (서울 : 도서출판 숲, 2011)

2. 헤로도토스, '페르시아 전쟁사', 우위펀 엮음, 강은영 옮김, (서울 : 시그마북스, 2008)

3. 안나 반잔, '페르시아', 송대범 옮김 (서울 : 생각의 나무, 2008)

4. 이경덕, '황금과 교역의 나라 페르시아', (서울 : 아이세움, 2008)

5. 주디스 코핀, 로버트 스테이시,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 상', 박상익 옮김 (경기 : 소나무, 2014)

6. '에스더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목회와신학 편집부 엮음 (서울 : 두란노, 2009)

7. 캐롤 M. 벡텔, '현대성서주석 에스더',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10)

8. 최종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에스더'(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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