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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1. 2017

죽음을 친구삼아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추석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자. 장손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외가가 있는 작은 시골 마을 뒷산에는 할머니 산소가 있다. 산소는 외삼촌이 때를 따라 벌초도 하며 돌보아 주었다. 아버지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본인이 직접 돌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특별히 할머니 산소를 보러 갈 때는 반드시 손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외가 식구에게나 할머니에게 체면이 서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나는 한 번도 할머니를 뵌 적이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산소를 가면서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여 들었다. 6.25 피난 시절 외가가 있는 마을로 피난 와서 살던 이야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고생하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우리 배씨 집안은 명이 짧아.”

할아버지는 40 초반에 돌아가셨고, 작은아버지도 40대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사시는 분 같았다.

“목사는 세 가지 준비를 해야 해.

설교할 준비, 이사 갈 준비, 죽을 준비는 언제든 해야 해.”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비장하였다. 무엇을 하든지 철저하였고, 진지하였다. 하루를 살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보다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나는 철저하지도 못하였고, 성실하지도 못하였다. 다만 닮은 것이 있다면, 죽음이 우리 삶 곁에 있다는 깨달음뿐이었다. 사춘기 때, 죽음을 생각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죽음을 친구 삼아 살고 있다. 성실하지도 않으면서, 철저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막연하게 오늘 죽어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대학 시절, 불교와 실존주의에 깊이 빠져 들었다. 죽음은 언제나 유혹이었다.


2005년 3월 31일 불과 37살 막냇동생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치열하게 삶을 살면서도 언제나 주변 사람에게 행복을 주던 동생이었다. 리더십도 있었고, 친화력도 있던 동생은 늘 나의 든든한 오른팔이었다. 세상을 떠난다면 당연히 형이 먼저 갔어야 한다. 나이로 보나, 삶의 의욕과 성실함으로 보나 나는 동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형이다.

“배씨 집안의 명은 짧아.”

아버지의 말은 불행하게도 동생에게 적용되었다. 죽음은 그렇게 내 곁에 다가왔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여자도 많이 그렸지만, 삶과 죽음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가난하지만 다복한 가정의 일곱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난하였기에 14살 되던 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의 손재주를 유심히 본 친척의 도움으로 국립 응용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실내장식과 조형물 작업을 하였다. 그가 서른 살 되던 1892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몇 달 후 사랑하는 동생 에른스트가 독감에 이은 심낭염으로 사망했다. 충격이었다. 그는 슬픔에 사로잡혔고, 3년 동안 붓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클림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죽음과 삶

1911년 그는 ‘죽음과 삶’이란 작품을 남겼다. 그즈음 유럽에는 세기말적 비관주의가 유행하였다. 1908년 시칠리아 대지진으로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2년 뒤에는 핼리 혜성이 나타나 사회적 공포가 퍼져나갔다. 클림트는 해골과 무덤의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을 표현하였다. 죽음의 사신 옆에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어느 하나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똘똘 뭉쳐 있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갓난아이에서부터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노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하나의 삶을 표현한다.


클림트는 그림의 제목을 ‘삶과 죽음’이 아닌 ‘죽음과 삶’으로 이름하였다. 삶 뒤에 죽음이 온다는 자연적 접근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죽음도 온다는 뜻이다. 이 그림을 완성한 후 몇 년이 지나 클림트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1918년 1월 11일 56세를 일기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지혜자는 말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전3:20)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를 담고 있는 전도서는 인생의 헛됨을 노래하였다. 모든 것이 헛되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4)


해와 달과 별과 비와 구름과 자연은 가고 옴을 반복하며 계속 존재하지만, 인간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 만물의 영원성과 인간의 한계성은 분명하게 대조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비교다. 전도서는 인간에게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인간은 자연과 대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도 창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 부분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죽음을 대면하는 일도 가슴 아프지만, 이 고통을 통하여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클림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비슷하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삶이다. 지혜자는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서 인생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철학자 프란츠 쿠췌라(Franz Kutschera)는 이것을 ‘죽음을 직면한 채 살아가는 삶’ (Laben im Angesicht des Todes)이라고 하였다.  


오늘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죽음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있다. 의미 없이 보내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시간을 아껴라! (엡5:16)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매일 매일 치열하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행복하게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자연 만물의 한 부분으로서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창조 섭리가 아닐까? 나는 행복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하고 싶어서 오늘도 죽음이라는 친구를 곁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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