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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손뼉 쳐 줄 수 있다면

by Logos Brunch

에든버러 선교대회를 이끈 존 모트(John R. Mott, 1865-1955)는 개신교 역사상 최고의 평신도 선교동원가이다. 그는 남북전쟁이 끝난 지 몇 주 후 뉴욕에서 태어났다. 목재상이었던 아버지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그는 20살 때 코넬 대학에 들어가면서 인생에 큰 변화를 경험하였다. 1886년 대학 2학년 때, 영국의 유명한 크리켓 선수이자 복음전도자인 스터드(J.E.K. Studd)의 메시지를 듣고 회심하였다. 그해 여름 헐몬산 기슭에 있는 무디 수양관에서 100명의 젊은이와 함께 존 모트는 선교를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소위 프린스턴 서약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1888년 학생자원운동(SVM 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발족하였고, 존 모트는 의장이 되었다. 불과 23살이었다. 그들의 포부는 컸다. 학생자원운동의 표어는 “이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였다. 당시 미국은 무디의 강력한 영향 아래 해외 선교 운동이 불붙었다.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서양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낙관주의가 범람하였다. 인류의 문명은 점점 발전하여 유토피아를 이룰 거라고 생각하였다. 기독교도 그러한 사상에 편승하였다. 2,000년이 되기 전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거라고 기대하였다. 교회역사가인 라토렛은 이 시기를 ‘위대한 세기’라고 하였다. 그들은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할 꿈을 꾸었다.


세계 선교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하여 뛴 사람은 청년 존 모트였다. 1888년 코넬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1년 동안 YMCA 순회총무를 맡아 전국 대학을 다니며 선교에 헌신하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미국 학생 선교사의 급증’이란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이 세대에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청년이 일어서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 비기독교 권에 10억 이상의 사람이 그리스도를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없는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모든 민족은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 세대에 그리스도를 전 세계에 전합시다. 악의 세력이 비기독교 세계를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가 이 세대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호소에 젊은이들이 반응하였다.


20세기 초반 세계 선교에 헌신한 사람은 목사나 사역자가 아니라 청년이었다. 특별히 싱글 여성이 대거 헌신하였다. 1891년 통계를 보면 영국은 싱글 여성만 944명 파송하였다. 미국에서는 1,004명, 스코틀랜드에서는 175명 파송하였다. 당시 기독교는 청년들이 선교에 헌신하고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20대 초반의 존 모트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준 기성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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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모트는 세계선교를 위한 조직적 활동을 위해 30살 되던 해 세계기독학생운동(The World Student Christian Movement)을 창설하였다. 그는 전 세계 24개국을 여행하면서 144개 대학을 방문하였다.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려 280만 km를 여행하였는데 거리가 자그마치 지구를 68바퀴 돌 정도였다. 당시는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이 쉽지 않았다.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서 한 달여 배를 타야 했고, 육로는 기차나 마차를 이용했다. 청년의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여행이다. 조선에도 두 번이나 방문하였는데 1907년 일본을 거쳐 부산, 서울, 평양을 두루 여행하였다. 석달 동안 조선을 돌아다니며 조선의 기독교를 살펴보았다. 그는 평양 대부흥을 목격하고 감동하였다. 존 모트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6,000명의 회중 앞에서 설교하였다. 그는 조선을 세계 선교의 모델 국가로 생각하였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며, 기도에 열성이고, 사랑을 나누며, 자립하려고 애쓰는 조선 기독교는 모범적 피선교 국가였다. 그는 조선을 방문한 후 ‘기독교 선교의 적정기’라는 책을 써서 조선 기독교를 소개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학생자원운동(SVM)에서 파송한 청년 선교사는 1939년까지 2만 5천 명이었다. 그는 평신도 청년으로서 선교사를 동원하고, 헌신을 요청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세계선교사대회를 기획하였다. 20년 동안 선교사를 열심히 파송한 존 모트는 1910년 43살 되던 해, 선교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였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한번 다 같이 모여 서로 격려하고, 선교의 방향을 정립하는 세계선교사대회를 열자고 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1910년 에든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 6월 14일부터 열흘 동안 159개 선교단체와 1,215명의 대의원이 참석하였다. 일부에서는 교회의 참여가 저조했다고 비판하였지만, 존 모트는 지금까지 파송한 선교사를 케어하고 선교를 지속하려는 생각으로 선교단체와 선교사 중심의 대회로 기획하였다. 에든버러 대회에 논의된 8개 분과 가운데 무려 5개 분과가 선교사 케어였다. 파송 전 훈련, 선교지 적응, 선교사 재교육, 선교사 개인 및 가정 위기, 선교사 자녀교육 등 선교사의 삶 전반을 다루었다. 에든버러 세계 선교대회는 선교사를 파송한 자로서 책임감 때문에 기획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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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 모트의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왜 우리 대한민국의 청년은 이런 꿈과 환상과 비전을 가지지 못할까 잠시 고민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해도 안된다’는 뜻으로 헬조선을 말한다.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견고한 계급적 사회구조 아래 자포자기하고 있다. 2015년 4월 30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3포 세대에서 7포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가 아니라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하는 7포 세대가 되었다는 기사다.


정말 현실이 그러한가?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올라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대비 820원 오른다. 최저 임금의 혜택을 보는 사람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다. 정부는 2018년 청년을 위한 일자리 예산으로 3.1조를 책정하였다. 신문은 연일 사상 최대 예산이라고 떠들었다.


그럼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하는 액수는 얼마일까? 2014년 2월 2일 한겨레신문 기사에 의하면, 연구 개발비, 비과세 감면, 정책 금융 지원 등 대기업 지원액은 총 126조 원을 넘었다. 그 해 청년에게 배당된 예산이 1조 3천억인데 대기업 지원액은 126조가 넘었다. 당시 정부 예산 규모의 35%를 대기업을 위하여 사용하면서 청년을 위한 예산은 1%도 안되었다. 대기업이 살아야 백성이 잘산다는 논리였다.


2013년 통계청 발표로는 전체 기업 중 대기업이 0.9%밖에 안 된다. 그런데 0.9% 대기업 매출액이 2,649조 1,020억 원이다. 상상이 안 되는 액수다. 2,649조 1,020억 원을 버는 대기업에게 정부는 또 126조를 지원하고 있으니 이는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도대체 대기업이 얼마만큼 부자가 되어야 그들이 청년 일자리나 청년 창업을 위하여 투자를 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해줄 것인가? 겨우 3조 원(2018년)을 청년 일자리 예산에 배정했다고 난리치는 정치인들이나,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들 시급을 820원 올렸다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드는 언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청년들은 될 데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니트족이 되고 있다. 나라가 이 모양이면,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도 나라와 비슷하다. 23살 청년 모트에게 리더십을 주면서 세계를 다녀 복음을 전하고 선교 동원을 하게 했던 서구 교회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청년 대표가 교회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전통사상이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려 청년을 외면하고 있다. 사실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다.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주도할 때도 20대였고, 영국과 미국의 대부흥을 일으킨 존 웨슬리와 휫필드도 20대 초반부터 활동하였다.


리더십과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헌신만 강요하면, 지칠 수밖에 없고, 꿈도 꿀 수 없다. 기성 장벽이 너무나 높고 크다. 평신도 청년 존 모트가 세계적인 선교 동원가가 되고, 나중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된 데는 기성세대의 지지와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변하고, 미래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하려 한다면, 노인들이 뒤로 물러나고 청년들이 앞에 서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에게 리더십을 주고, 뒤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청년의 헌신과 비전과 열정에 손뼉 쳐 주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한국 교회에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혼자 꿈꾸어 본다.


참고 문헌

1. 임희모, '존 모트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선교신학 24집 상권, 2010년

2. 안희열,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와 존 모트의 선교동원' 복음과 선교 13집, 2010년

3. 이복수, '에딘버러 1910의 신학적 역사적 배경과 선교이해', 복음과 선교 13집, 2010년

4. 스티븐 니일, '기독교 선교사', 홍치모, 오만규 옮김, (성광문화사:서울) 1993년

5. 케니스 래토레트, '기독교사 하' 윤두혁 옮김, (생명의 말씀사:서울) 1992년

6. '3포세대? 이제는 7포세대!, "결혼·출산·내집마련順 포기'조선일보 2015년 4월 30일 기사

7. '나랏돈 ‘연 125조원’ 대기업에 쏠린다' 한겨레신문 2014년 2월 2일 기사

8. '기업 불평등' 극심…1% 대기업이 전체 매출 3분의 2' 프레시안 2013년 12월 2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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