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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3. 2018

마음이 청결한 사람

산상수훈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반대로 질문해 볼까요? 마음이 불결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야고보 사도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고 하였다. 예수님도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예수님은 ‘두 마음’을 ‘외식(hypocrites, 위선)’이라고 하였다. 외식은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른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겉모습과 속마음은 어떻게 다른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23:25)


바리새인의 겉모습은 깨끗하였다. 잘 닦아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잔과 대접 같다. 그들은 매일 정한 시간마다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였다. 그들은 예배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헌금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들을 칭찬하고 심지어 존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불결하였다. 그들의 거룩한 종교생활 이면에 숨은 마음이 있었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이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선이다. 가식이다. 두 마음이다. 불결하다. 겉으로는 신실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신앙인 같지만, 사실 그 마음은 세상 욕심으로 가득하였다. 그들은 세상에서 인정받고 존경받고 대우받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소망하였다. 세상에서 대우받기 위하여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권세도 필요하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과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 했고, 실제로 그것을 누리며 살았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가만 들어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그는 자기가 존경받고 인정받는 근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한다. 가식으로 외식으로 금식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그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바칠 때 얼마나 아까웠을까? 그래도 드린 만큼 복을 받을 것이라 믿기에, 아니 천배 만배 받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그들은 기꺼이 드렸다. 


그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세상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벼랑 끝으로 밀고 밀어서 죽여버렸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였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17:9) 그는 얼굴 화장만 집중하였지, 마음 화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좋은 차를 몰고 와 예배에 참석한다. 그는 언제나 정 중앙 앞자리에 앉는다. 품위있고 맵시 있는 옷차림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난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예배에 참여하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세상 생각으로 가득하다. 

‘오늘 누가 나를 보고 인사를 안 했나? ‘

‘고얀 놈 오십 척 장대 높이 끝에 매달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는 존경 받고 싶어 안달 난 정신병자다. 그는 돈으로 사람 무시하고, 이태리 최고급 양복으로 약자를 깔보고, 향수 냄새 풍기며 상처받은 사람을 외면한다. 


그렇다고 성경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하는 제자훈련은 일찍이 수료했고, 소그룹 성경공부 리더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든 성경 지식과 교리는 마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달라스 윌라드는 그런 그리스도인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예수님! 부디 당신의 피가 조금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학생이 되거나 당신의 성품을 닮을 마음은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인생을 즐기는 동안 좀 못 본 척해 주시렵니까?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자기 마음이 불결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바울은 고백하였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시편 저자는 고백하였다.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86:11) 그는 자기 마음이 자꾸만 둘로 갈라지는 문제로 고민하였다. 그의 기도는 절박하였다. '하나님! 내 마음을 정하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은 단순히 영적인 차원이나 정신적 차원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다. 마음은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포함하는 전인(全人)이다. 바울은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은 세상의 욕심으로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순전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헌신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을 본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뜻인가? 영적으로 본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한다. 


마음이 세상을 향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뜻도 볼 수 없다. 그들은 오직 자기 마음의 소원과 욕망만 볼 뿐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보는 척해도 그것은 흉내 내기일 뿐이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소망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한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약4:8)고 권면하였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말은 하나님과 손잡고 하나님과 동업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목표에 함께하라는 뜻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 하나님의 비전에 자신의 일생을 헌신하였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으며”(히11:27) 나아갔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지금도 보긴 하지만 아직 희미하고 어렴풋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그는 온전히 보고 알게 될 것이라 확신하였다. 사도 요한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


두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으로 정하고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헌신하며 나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볼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도한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엡1:18)인지 분명히 보아 알기를 소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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