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도 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여 허기진 가족을 버려두고 여기 나온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혼하여 가정이 깨어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아 오갈 데 없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병든것 때문에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지참금이 없어서 결혼할 소망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빠듯하여 자녀 교육도 제대로 못하고, 노후 연금 하나 들지 못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 눈치 보며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폭행 당한 것도 억울한 데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고 야유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모여든 회중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던 그들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뱅이였고, 실업자였고, 가정이 깨어졌고, 병들었고, 소외당하였고, 장래 희망이 하나도 없었고, 설움과 폭행과 비웃음과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그들은 모두 궁금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그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업자는 능력부족을 탓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골목길을 숨어다녀야 했습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가장은 무능함을 지적받아야 했습니다. 할 일 없이 파고다 공원에서 장기 두는 것을 온종일 기웃거려야 했습니다. 그는 인생 패배자요 낙오자였습니다. 그를 받아 줄 사람도 사회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유로든 이혼하고, 가정이 깨어진 사람은 수치를 당하기에 딱 좋은 세상입니다. 오랜 기간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언제나 가족 보기 미안합니다. 재정적인 압박도 그러하고, 자기 때문에 가족이 행복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죄스럽습니다. 아이들이 학원 보내달라고 해도 보내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세들어 사는 작은 집에 올라가면서 아빠 손을 잡은 아이가 “아이스크림 하나만” 하는 데 사줄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저는 언제나 “다음에 사줄게’ 하면서 공수표를 남발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변변한 학원 하나 보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큰 아이가 자립하여 그 아이가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렇게 미안한 자리에만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무능하다, 바보 같다, 성실하지 못하다, 뭔가 문제가 있겠지 온갖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아니 백까지 세상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이드존스는 가난이란 세속 정신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세상 부귀에 의존하는 정신은 정죄 받았습니다. 세상은 세상의 것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 미모, 도덕, 안전, 안락 등입니다. 그것으로 사람을 줄 세우기 합니다. 앞에 선 사람, 위에 선 사람은 어깨에 힘을 주고 으쓱거립니다. 밑에 있는 사람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괴롭힘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수입하여 쓴다는 사실입니다. 설교단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세상에서 행복하자는 것입니다. '머리될지언정 꼬리 되지 말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되어서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라. 천배 만배 복 받는 비결이 있는데 왜 외면하느냐!' 교회에서 세우는 강사들의 간증은 한결같습니다. 세상에서 성공과 승리의 비결을 강의하는 강사와 거의 같은 내용을 전합니다. 다만 사족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라는 말을 덧붙이긴 하지만, 그 말만 빼면 세상 강사의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바알의 풍요 사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로이드존스는 다시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와 가난하게 되는 것이 항상 인기가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속하는 그 어느 것과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합시다.”
그리스도인은 전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나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어린 소녀가 임신하였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주는 답은 뻔합니다. 어린 소녀가 몸을 함부로 굴리더니 저 모양 저 꼴이 되었군.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그 소녀의 신분을 모조리 공개하여 망신시킬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약자를 짓밟는 것이 일상입니다. 경찰도 피해신고자를 오히려 범죄자로 여기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골치 아픈 소녀를 누구도 떠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경제적 부담만 주는 소녀라고 구박합니다.
그러면 교회 교인들은 무어라 말할까요? 그들도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경의 윤리를 율법적으로 해석합니다.
“낙태는 죄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너의 문제는 네가 해결하라.”
“평생토록 사생아로 인해 고통을 겪어봐야 정신을 차릴 거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심한 손가락질을 할지 모릅니다.
모두가 그녀를 피하려고 할 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녀를 은혜의 눈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녀를 품어 안을 것입니다. 그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그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녀가 울면 주님도 함께 울어줄 것입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 줄 것입니다. 비록 그녀는 잘못을 저질렀고, 지금 엄청난 결과를 맞이하였지만, 주님은 그 모든 죄의 결과를 대신 짊어지실 것입니다. 주님은 평생 그녀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기죽지 마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고, 너의 편에 서 계신다. 너를 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뜻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님은 그녀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으로 함께함으로 소개하였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한 그 소녀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녀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오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 손가락질하고, 서로 정죄하고, 서로 비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줄세우기 하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자리할 곳이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여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품어 안으시면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자고 도전하십니다. 이 도전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도전입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를 새롭게 바꿀 의도가 없습니다. 이 나라가 법으로 동성연애를 금지하고,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나라가 되면 좋을까요? 이 나라가 정치적으로 바르게 되면 육신적으로 조금 좋아질는지 모릅니다. 균등한 분배를 통한 복지를 실천하고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저도 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마땅히 가르치고 해야 할 일을 정부에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인권을 옹호하고, 정부에서 동성애도 이슬람도 막아주고, 정부에서 좋은 법도 만들어 달라고 국회의원을 압박하고, 플래카드 걸고 집회도 합니다. 정부가 답일까요? 아닙니다. 교회가 답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은혜를 율법으로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 안아야 합니다. 결코 비방이나 정죄나 판단으로 품어 안을 수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더 품어 안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피폐하여 기댈 곳 없는 사람들,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참고도서
1. 로이드존스, '산상설교집 상', 문창수 옮김 (정경사, 서울) 1980년
2.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김기철 옮김 (복있는 사람, 서울)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