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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24. 2015

부패하고 타락하는 이유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요 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민족적 동질감을 연구하다가 고난과 핍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전쟁터에 서면 애국심보다는 전우애가 우선한다. 사실 병사들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정치적인 입장 따윈 아예 생각도 못 한다. 다만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옆의 전우가 다치거나 전사하면 그때부터 달라진다. 전우를 향한 사랑이 끈끈해져서 죽음도 불사하고 싸우게 된다.


친구들끼리 만나도 유독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예의상 들어주며 공감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잘난 척 너무 한다.'고 비웃을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아팠던 것, 실패했던 것, 괴로운 것을 솔직하게 나누는 친구에게 마음이 열리게 된다.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십자가의 고난으로 시작하였다. 기독교는 낮은 자의 종교였다. 사회에서 소외당한 자, 멸시받는 자,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종교였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진 고난과 핍박 속에서 동질감을 가지고, 더욱 순수하게 신앙을 지켜나갔다. 지하 동굴 묘지에서 함께 울며 기도할 때 진실한 기독교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러나 고난이 사라졌을 때 교회는 급속도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권력자의 편에 서서 돈 맛을 보기 시작하고, 권력 맛을 보기 시작할 때 기독교는 본질을 잃어버렸다.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을 귀하게 보고,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돌보지 않았다. 중세 천 년의 기독교가 부패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종교개혁자들의 구호였다. 물론 이 구호에 담긴 의미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약자의 편에 서기를 소망함도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지배층만 보던 성경을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였다. 약자와 함께 섰던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개신교는 약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기득권의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편안과 안락에 익숙한 개신교는 다시금 성공 신학, 기복 신학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기독교인의 자랑을 들어보면,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축복을 많이 받아 성공했는지를 자랑한다. 그게 예수 잘 믿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것이 뭐 대단하다고.... 눈물 속에서, 고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잊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진정 소망해본다. 

 

바울은 혹여 기득권의 자리에서 편안과 안락에 취하여 살까 두려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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