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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11. 2018

인쇄술과 종교개혁

영화 스톰을 보고서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네덜란드에서 종교개혁 관련 영화를 개봉하였다. 데니스 보츠(Dennis Bots) 감독이 연출한 ‘스톰 : 위대한 여정’(Storm: letters van vuur)이다. 이 영화는 종교개혁 당시 인쇄공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로서 허구이지만, 많은 장면이 역사적 정황을 담고 있다. 

종교개혁은 인쇄술의 발전이 없었으면 불가능하였다. 영국의 선구적 종교개혁자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루터보다 약 150년 앞서서 종교개혁 사상을 설교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의 사상을 필사하여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위클리프가 사는 동네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지만, 전국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로마 가톨릭도 위클리프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후 1415년에 가서야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의 저서를 불태웠다. 반면에 루터의 사상은 인쇄술의 발달 덕분에 몇 달 이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독일 작가 세바스티안 브란트(1457~1521년)는 1498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쇄술의 발달로 한 사람이 과거에는 수천 일 동안 필사해야 생산할 수 있었던 양을 단 하루 만에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인쇄술은 중국에서 개발하였지만, 그 혜택을 누린 곳은 유럽이었다. 인쇄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는 종잇값으로 이집트에서 생산하는 파피루스는 비싸고 품질이 떨어졌다. 둘째는 잉크 문제로, 지금까지 잉크는 너무 천천히 건조되어 나중에 번지는 현상이 일어나 인쇄에 적절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금속활자의 개발이었다. 이 모든 기술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이제 값싸게 인쇄할 기반이 만들어졌다.

1454년 경 구텐베르크가 마인츠(Mainz)에 인쇄소를 처음 설립한 이후 유럽 모든 지역으로 인쇄 기술이 전파되엇다. 1459년에는 스트라스부르그와 밤베르크에, 1464년에는 독일에, 1470년에는 파리에 인쇄소가 세워졌다. 1480년 유럽에 인쇄소는 121개가 되었고, 1500년에는 252개나 되었으며 그중 62개는 독일에 있었다. 1500년 252개 인쇄소에서 2만 7,000 종류의 작품이 총 2천만부 간행되었다. 그 중 3분의 1은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독일은 인쇄술의 핵심 국가였으며, 이러한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은 널리 퍼져 나갔다. 


1456년 구텐베르크 인쇄소에서 라틴어 성경을 처음 출판했다. 그들은 책 표지에 인쇄업자, 인쇄 장소, 출판 일시를 명시하는 관습을 수립하였다. 덕분에 중세 인쇄 정보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어 후학들이 편하게 연구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안트워프(Antwerp)시는 항구도시로서 그곳에서 출판한 서적이 국제적으로 퍼져 나가는 통로가 되었다. 1500년대 안트워프에서 인쇄된 책은 인도, 중국, 일본, 멕시코, 페루 등 유럽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16세기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문맹이었다. 알려진 통계에 의하면 전 인구의 대략 3,4%만 글을 읽었고, 여자는 1%도 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이 교육에 힘을 쓴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사상을 널리 퍼트리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1587년 베니스의 통계로는 14%의 청소년이 학교에 다녔다. 


당시 출판되는 77%의 인쇄물은 교회와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로 되어 있고, 6%는 독일어, 7%는 이탈리아어, 4.6%는 프랑스어, 1.3%는 네덜란드어, 그리고 나머지는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슬라브어 등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식인들이었다. 인쇄소는 지적 사교의 중심이었다. 최첨단 인쇄기술 덕분에 인문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에라스무스는 후원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책을 출간하는 수익으로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전 유럽을 다니며 자기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는 방문하는 도시마다 인쇄소에 가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베아투스 레나누스(Beatus Rhenanus, 1485~1547)의 기록에 의하면, 베네치아를 방문한 에라스무스는 인쇄소에 가서 교정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교정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기에 인쇄소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인쇄실의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그의 글 쓰는 모습을 보고 인쇄업자들이 놀라기도 했다. 그는 바젤을 방문했을 때도 어김없이 인쇄소를 찾아가 일을 도와주곤 했다. 당시 많은 인문학자가 에라스무스를 따라 인쇄소에서 일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고백하였다. “나는 아주 상쾌한 뮤즈의 집(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학식을 갖춘 뛰어난 학자들이 옆에 많이 있습니다.” 


에라스무스의 뒤를 이어 떠오른 베스트셀러 작가는 마틴 루터였다. 루터는 저작권이나 인쇄를 요구하지 않아 출판에 따른 수익은 고스란히 인쇄업자에게 돌아갔다. 루터는 라틴어로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평민들도 읽기 쉽도록 독일어로 글을 썼다. 따라서 루터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종교개혁은 도서 시장을 급격하게 확장하였다. 출판 업자에게 루터 작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546년 루터가 죽기까지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독일 북부에서 3,400판, 남부에서 430판 출판되었으니 대략 100만 권 정도였다. 당시 책값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숫자이다. 

로마 가톨릭도 넉 놓고 당하진 않았다. 종교재판관이자 서적감시관이었던 추기경 마졸리니(Mazzolini, 1456~1523)은 루터를 이단으로 고발했다. 1520년 6월 교황 레오 10세(Leo X, 1475~1521)는 루터를 출교하겠다고 경고하는 교서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루터의 글을 압류하고 불태우도록 명령하였다. 1521년 정식으로 루터를 재판하기 위해, 보름스 제국의회가 열렸다.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루터 이외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이다. 영화는 루터가 체포되는 듯한 분위기를 처음에 꾸며내지만, 루터는 체포되지 않았다. 그리고 루터의 편지가 안트워프 인쇄업자 클라스(Drukker Klaas Voeten)에게 전달된다. 안트워프는 당시는 네덜란드 영토였지만, 지금은 벨기에에 속한다. 항구도시 특성상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빨리 흡수하고 퍼트리는 곳이어서 가톨릭이 특별 단속하는 지역이었다. 


새롭게 부임한 서적 감시관이자 재판관 홀스트(Frans Van Der Hulst)는 안트워프의 종교개혁 사상을 잠재울 특명을 받았다. 인쇄업자 클라스는 체포되고, 그의 아들 스톰(Storm)은 루터의 편지를 인쇄하려는 활판을 가지고 도망을 친다. 그리고 12살 꼬마 스톰은 모든 난관을 뚫고 마침내 루터의 편지를 인쇄하여 온 도시에 퍼트렸다. 

아버지가 처형되는 날, 스톰이 퍼트린 루터의 편지를 읽은 주민이 폭동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구하며 종교 재판관을 몰아낸다. 루터의 사상과 인쇄업자들의 노력 덕분에 세상은 변하였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확립하였고, 보수 전통에 사로잡혀 있던 기득권층을 퇴출하기 시작하였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최첨단 매체인 인터넷 기술을 누린다. 새로운 매체를 통하여 낡은 전통,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을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교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참고도서 

1. 알리스터 맥그래스, ‘종교개혁사상’, 최재건 옮김 (CLC : 서울) 2006년

2. 한스 요아힘 그립, ‘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역사’, 노선정 옮김(이른아침 : 서울)  2006년

3. 한스 하위징아, ‘에라스뮈스’,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 고양) 2013년

4. 카트 린드버그, ‘유럽의 종교개혁’, 조영천 옮김 (CLC : 서울) 2012년

5.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 ‘발견의 시대’, 김지연 옮김 (21세기북스 :  서울) 2018년

6. 피터 버크, ‘지식의 사회사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 박광식 옮김 (민음사 : 서울)  2017년 

7.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 (IVP : 서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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