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래드 목사 이야기
2011년 2월 8일 화요일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날이다. Northwest 장로교회 Nate Conrad 목사는 평소 빙벽 등반을 즐겨하였다. 영하 17도의 화창한 날씨는 빙벽 등반하기에 최고로 좋은 날씨였다. 그날 그는 노련한 등반가 친구들과 함께 뉴햄프셔의 유명한 드라큘라 빙벽에 도전하였다.
아찔한 얼음절벽에 매달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면,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모든 목회적 스트레스를 다 떨쳐버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등반을 하였던 콘래드 목사는 그날따라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 자신의 등반 실력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는 선등 하기로 하였다.
그는 34 미터 빙벽을 제일 앞장서서 오르면서 얼음 나사못을 박아 뒤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길을 개척하는 선등을 하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빙벽 3분의 2 지점에 이르렀을 때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팔다리는 후들거렸다. 나사못을 더 박을 수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피켈을 최대한 깊이 찍어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다. 등산화로 빙벽을 다시 차서 발밑을 단단하게 고정한 후 친구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는 친구가 던져준 로프를 잡을 힘마저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 그의 발은 미끄러지고 피켈은 빠졌다. 그는 20m 아래로 곧장 떨어졌고 튀어나온 얼음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엄청난 사고에도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넓적다리뼈와 새끼손가락, 두개골 일부와 눈 뒤의 안와 골절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 3년 동안 등반을 함께했던 한 친구가 사고 영상을 14분으로 편집하여 vimeo에 올렸다. 사고 동영상은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미국의 최고 등반가인 윌 가드(will Gadd)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제목은 “이런 꼴이 되지 않는 법”이었다. 선등 할 실력도 체력도 없으면서 앞장서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뿐이라며 비판하였다. 등반의 ABC도 모르는 무식의 극치라고 비난하였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장비를 다 팔아치워라."
“이놈은 곧 죽겠군"
“내가 이 남자라면 다시는 뉴햄프셔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겠다."
온갖 악플이 달렸다.
콘래드 목사는 몸과 마음과 정신에 큰 상처를 입었다.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도전하였고, 자신도 최고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다. 승리하자. 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고, 모든 사람의 비난과 욕설을 듣게 되었으니,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다. 자존심은 무너졌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제 무어라 말할 것인가? 리더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른다.
얼음 빙벽에서 떨어진 것보다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진 콘래드 목사는 다시 일어서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사는 것이다. 실수하였다고, 넘어지고 자빠졌다고 그냥 주저앉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그는 제일 먼저 자기를 비판했던 윌 가드에게 여러 차례 메일을 보냈다.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의 실수와 부족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한 수 가르쳐 달라고 고개 숙였다. 그의 진정성에 윌 가드의 마음은 움직였다. 윌 가드는 기꺼이 그의 멘토가 되었다. 콘래드 목사는 이 일을 통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자존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진심을 얻는 것이다. 사고 이후 그는 더욱 낮아졌다. 리더로서, 목사로서 가져야 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그는 성공과 승리보다 실패와 좌절이 주는 교훈이 얼마나 유익한지 배웠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장점보다 약점을 더 자랑하겠다고 하였는데 콘래드 목사는 사람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로 하였다. 그는 낮아짐의 원리로 원수들, 비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한국 교회는 지금도 성공과 승리를 설교하는 목사가 많다. 결과와 열매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바울은 열매에 연연하지 않았다.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다 순교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현대 교회는 누가 최고 큰 건물을 짓는가를 경쟁하는 듯하다. 주님은 승리자, 존귀한 자, 가진 자들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오시지 않고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죄인의 친구로 이 땅에 오셨다.
콘래드 목사 이야기 https://vimeo.com/20549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