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약장수가 구성진 목소리로 외쳐댄다. 그의 곁에는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입으로 넣는 차력사가 있다. 차력사는 가슴에 굵은 철삿줄을 감고서 ‘으랏차’ 소리와 함께 끊어버린다. 굵은 철근을 이마에 대고 힘을 주어 휘어버리곤 한다. 사람들은 ‘우와’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허름한 나무궤짝에 묶인 원숭이 곁에 올망졸망 모여있다.
“아이들은 가라 가.”
사람들의 호기심이 한데 모였을 때 약장수는 본색을 드러낸다. 어디서 만들었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약병 하나를 들고 소리친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멀미, 두통, 현기증, 복통, 소화불량, 구취제거, 폐병, 장질부사, 무좀, 피부병, 감기 등에 특효가 있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순진한 시골 사람들은 약병 하나씩 사곤 했다. 신기하게도 약장수는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마을을 떠나곤 하였다.
동창회 가면 꼭 남편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부부 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경로당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 자랑에 열을 올린다. 어릴적부터 다 알고 지내는 친구 사이인데도, 끊임없이 자기가 이룬 업적을 떠벌리는 사람도 있다. 그 집 숟가락 젓가락 숫자까지 다 아는데 천연덕스럽게 으스대는 모습은 꼴사납다. 심지어 남의 공로를 가로채서 마치 자기가 한 일인 양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속 빈 강정이다.
자랑은 자기가 믿고 신뢰하는 것이나 삶의 근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행위다. 길거리 약장수는 끊임없이 거짓을 자랑한다. 거짓으로 밥을 먹고 산다. 직업은 바뀌었어도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남편 자랑, 아내 자랑, 자녀 자랑, 손주 자랑, 자기 자랑하는 사람은 별 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듣기 역겨울 뿐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현대는 자기 PR 시대라고 한다. 여기 저기 광고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나도 예외는 아니다. 캐나다 선교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수십명의 선교사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마침 캐나다에 사는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자랑했다.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똑똑한지 자랑질을 해댔다. 그저 인사치레로 해주는 칭찬에 속아서 나 혼자 신이 났다. 그때 아르헨티나에서 온 선교사가 점잖게 한마디 했다. 자기 아들은 이번에 하버드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한국을 빛낼 차세대 지도자 20명에 들어 갔다고 하였다. 그 순간 혼자 도취하여 정신을 팔고 자랑질을 하던 나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지금도 가끔 딸 자랑에 여념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돌이켜 보았다. 왜 그럴까? 딱 한 가지 이유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 돌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영광 돌린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자랑하지 않는 사랑은 무엇일까? 그건 무엇을 자랑하느냐의 문제이다.
부정적인 면에서 육체를 따라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고후11:18). 돈 자랑, 세상 자랑, 자기 자랑, 육체 자랑은 모두 허탄한 자랑을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주 안에서 자랑하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실체가 보인다. 자랑해서 아무 소용없는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고, 진정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에 합당한 자랑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나는 너무 실수를 많이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나의 무가치함을 증대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이 바로 허영이다." - 조셉 스토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