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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10. 2019

사랑은 교만하지 않으며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만인 것 같다. 내가 부이사장으로 섬기던 선교단체에 친구가 나타났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말쑥한 정장에 예의 바른 태도로 손을 내미는 친구가 낯설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늘 함께하던 친구였다. 장래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던 친구였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 탄식하며 울분을 함께 토로하던 친구였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 집에 들러서 같이 밥을 먹기도 하였다. 부목사로서 멋지게 사역하다가 대형교회에 담임이 되었을 때 축하하며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되었나? 친구는 누가 봐도 경건하고 훌륭하고 멋진 목사로 변하였다.

“배 목사 오랜만이네”

그는 날 ‘경락아’라고 부르지 않았다. 악수 한 번 하고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데 섭섭하였다. 비록 내가 작은 교회 목사이지만, 우린 친구 아니었던가? 그 후로 한두 번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지만,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늘 그리고 사모하던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에 한동안 목회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 후로 난 그 친구 같은 목사를 몇 차례 더 만났다. 미국에 와서도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젊은 목사가 딱 그 친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론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이제 40을 갓 넘겼을까? 실력도 있고, 설교도 잘하고, 교회 성장도 시키는 탁월한 목사이다. 옆에 비슷한 또래의 부목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는데, 처음 보는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가 왔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허름한 차림의 늙은 목사니까 그리 보았던가?

“언제 시간 있으면 한 번 식사나 같이 하시지요?”

지나가는 인사말에 나는 대꾸하기가 싫었다. 무얼 사준다고 해도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 목사님이 억울할 수도 있다. 교만하지 않은데 내가 그리 보았고 느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는 교만이라고 하였다. 교만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이다.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걸리기 쉬운 죄이다. 영성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걸리기 쉬운 죄이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범하기 쉬운 죄이다. 목회 잘하는 목사가 저지르기 쉬운 죄이다.


육체적 본성에 따라 나오는 죄는 새 발의 피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사단의 앞잡이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이론적으로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허깨비 하나님(교만한 자가 믿는 거짓 하나님)이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보다 훨씬 낫게 여기며 인정해 준다”(Lewis, 197)고 늘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늘 이 죄에 걸릴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들어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Image)이 어떠한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가? 사랑, 자비, 오래 참음, 양선, 은혜, 긍휼, 온유 등이 아닌가? 교만, 무시, 외면, 적대, 미움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자기를 드러내는 죄이다. 교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실력과 능력과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타내고 싶어 하나님을 뒤로 밀쳐버리는 죄이다. 스피노자는 말하였다. “교만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심강현, 56%) 사람은 자부심(Pride)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여 하나님을 밀쳐버리는 단계로 가면 바로 교만이 된다. 사단이 저질렀던 죄이고, 사단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범하는 가장 무서운 죄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높이며, 그렇게 함으로 자기 자신을 멀리(깊이) 떨어지게 한다.”(Fairlie, 52)


Lewis, C.S.,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장경철, 이종태 옮김, 서울 : 홍성사, 2001년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E-book, 서울 : 을유문화사, 2016년

Fairlie Henry, 현대의 일곱 가지 죄(The Seven Deadly Sins Today), 이정석 옮김, 서울 : CLC,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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