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용돈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개척교회 하는 목사 아들에게 여유란 있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 떨어진 동전 하나만 보아도 어렵게 가정을 이끌어가는 어머니 생각에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동전 한 닢 주어다 드려도 기뻐하실 어머니 생각에 집으로 달려간 기억이 난다.
방과후 친구들과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저녁 식사하러 학교 앞 분식점에 갈 때면, 뒤에 처져서 혼자 몰래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아주 가끔 어머니가 맨날 얻어먹지 말고 친구들에게도 한번 사주라 하면서 돈을 주면, 난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자린고비 같으신 어머니의 돈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수학여행, 졸업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가능하다면, 한 푼이라도 아껴쓰려고 몸부림쳤다.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이 나를 닮았는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친구들 앞에서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혹여 누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 때에도 자격지심 때문에 쉽게 그 호의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남는 것은 오직 자존심뿐이었다. 나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 숙이는 일은 내 사전에 없었다. 누가 나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하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렸다.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게 인생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때 알았다. 물론 아직도 나는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다.
미국으로 건너 오면서 담임 목회할 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어려워졌다. 20년 목회하면서 얻은 것은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얻었다기보다는 수많은 곡절 끝에 겨우겨우 배운 것이다. 마음의 여유는 나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마음의 여유는 남의 잘못도 기꺼이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품어낼 줄 아는 것이 여유다. 내 잘못을 인정해야 남의 허물도 품어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자격지심과 자존심으로 뒤엉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되었기에 때로 바보처럼, 때로 어리숙함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가고 있다. 이렇게 삶의 지혜를 하나하나 어렵게 배워가면서 조금씩 사람들과 평화하게 되었다.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바보라 하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건 변함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