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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28. 2019

남자의 세계

에스더 1:1-8

모든 남자는 스파르타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로서 강력한 군대로 유명하다. 스파르타 남자는 일곱 살이면 부모 품을 떠나 군사 훈련을 받고 강한 전사가 되었다. 스파르타 남자는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들에게 행복은 승리였다. 승리한 군사는 자신이 얻은 전리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모든 남자는 힘으로 평가받았다. 권력, 명예, 돈, 지식은 힘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만일 남자에게 힘이 없다면 그는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 


비록 스파르타는 사라졌지만, 스파르타가 요구했던 남성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남자의 세계는 힘(돈, 권력, 명예,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고대 페르시아를 비롯하여 모든 나라가 힘을 숭상하며, 힘을 추구한다. 

에스더 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페르시아는 인도로부터 구수(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127 지방을 다스렸다. 거대한 제국이다. 승리와 힘을 숭상하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국가)의 성공 뒤에 얼마나 많은 패자의 눈물과 고통이 있는지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다. 고대 페르시아가 정복한 그 큰 땅에 수많은 족속과 나라가 있었다. 


고대 전쟁은 ‘모 아니면 도’의 싸움이었다. 승리하면 모든 것을 가지지만, 패배하면 끝이었다. 백성은 노예가 되고, 가진 재산은 모두 빼앗겼다. 거대한 제국의 왕 아하수에로는 6개월 동안 잔치를 하였다. 잔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잔치는 왕의 여름 별궁에서 열렸다. 뜰에는 흰색과 파란색의 무명 커튼을 드리워 그늘을 만들었고, 자주색 세마포 줄로 대리석 기둥의 은 고리에 매달아 장식하였다. 당시 염색기술은 형편없어서 색을 집어넣은 천은 귀족이나 왕족만 사용하였다. 바닥은 화반석, 백석, 운모석 등 색색의 돌을 깔아 문양을 만들었다. 의자는 은과 금으로 만들었고, 술잔은 금이었으며 잔마다 아름답게 세공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6개월 동안 군 지휘관, 지방 관원과 총독 등 관리들이 먹고 마시고 잔치하면서 페르시아의 화려함과 풍요로움과 권세를 마음껏 자랑하였다. 그리고 수도 수사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주일 동안 잔치를 하였는데 왕이 내리는 술이 흘러넘쳤다. 누구나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셨으며, 술 심부름꾼은 계속하여 빈 잔을 채웠다. 


이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들은 모두 승자들이고, 가진 자들이고, 힘 있는 자들이었다. 페르시아의 수도에 사는 사람은 평민이라 할지라도 이미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수도에 살면서 당대 최고의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누렸다. 


그렇다면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전쟁에 패배하여 재산을 빼앗기고,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유대인도 그들 중 한 무리였다. 시골에 사는 페르시아 농민들 역시 온갖 세금을 내고, 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했었다. 그러나 잔치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자 중에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은 여자다.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는 남자들의 잔치다. 남자라고 다 남자가 아니라 승자여야 하고, 가진 자여야 하고, 기득권층이어야 진정한 남자다. 능력 없는 남자, 패배한 남자, 무기력한 남자는 남자도 아니므로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물론 왕후 와스디는 (귀족) 여자들과 함께 잔치하였다. 그들은 힘 있는 남자들의 부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자와는 분명 격이 다르고 대우가 달랐다. 여기서 사회 계급이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힘 있는 남자 > 힘 있는 남자 부인 > 힘없는 남자 > 힘없는 남자 부인 > 남자 노예 > 여자 노예.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현대 사회는 계급 사회가 아니어서 계급이 세분화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분명하다. 


하버드 대학교수이자 교육 신경과학 분야의 선도적인 사상가 토드 로즈(Todd Rose)는 ‘평균의 종말’이란 책에서 평균주의의 허상을 지적하였다. 그는 오랜 연구를 통해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19세기 농업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전환하면서 공장 자동화가 시작되었다. 공장은 자동화 기계처럼 움직이는 표준화된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표준화된 세상을 위한 ‘평균주의’ 사상이 등장하고, 평준화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공장의 표준화된 제품처럼 되도록 요구받았다. 위에서 지배하고 다스리는 계층은 일반 대중을 표준화하고 평준화해서 사용하기 편하고, 다스리기 쉽도록 하였다. 


1900년 당시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구는 대략 6퍼센트였다. 특히 도시 이민자들과 공장 노동자들 자녀는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초기 교육 개혁가들은 새로운 학교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1912년 존 D. 록펠러가 자금을 대어 설립한 일반교육위원회는 평균주의 사고방식으로 무장하였다. 그들이 세운 학교 비전은 이러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나 이들의 자녀를 철학자나 학자나 과학자로 만들 생각이 없다. 우리는 작가, 연설자, 시인, 문인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예술가, 화가, 음악가가 될 만한 인재를 발굴하려는 것도 아니다. (중략) 이미 차고도 넘치는 변호사, 의사, 목사, 정치인을 키우려는 것도 아니다. (중략) 우리가 내세우는 과업은 아주 단순 명료할 뿐만 아니라 아주 훌륭하기도 하다. (중략)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모아 작은 공동체를 꾸려서 그 아이들에게 부모 세대가 불완전하게 수행 중인 일들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가르치려 한다.”


평균 주의자들은 공장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근로자를 위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찍어내듯이 다스리고 써먹기 편한 평균 인간을 만들기 원했다. 개인의 개성이나 잠재된 능력 발휘는 필요 없다. 이러한 지배 논리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깊은 역사를 가진다. 우리 옛말에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란 말이 있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 남자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회에 약자는 설 자리가 없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약자 중의 가장 약자는 여자다. 에스더 서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정을 맞고 또 맞은 여자 이야기다. 남자의 사회, 힘의 사회에서 약하디 약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사회, 즉 하나님 나라는 힘이 지배하는 나라, 권력과 돈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다. 승자 독식 사회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약한 자를 보살피며 그들의 아프고 속상한 사정을 헤아리는 사회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는 남성성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여성성이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남자로서 나는 단 한 번도 여성의 처지에서 성경을 읽지 않았다. 난 페미니스트도 아닐뿐더러, 페미니스트적 성경 읽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강자와 승자의 입장에서 읽지 않고, 약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읽음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스더 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 읽기 좋은 텍스트이다. 


참고도서 

1. 남인숙,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자음과 모음 : 서울) 2011년

2.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 서울)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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