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Kawabata Yasnari, 1899~1972) 이후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Oe Kenzaburo, 1935~) 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그의 어머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헌책방에서 사주었다. 미국과 전쟁 중에 미국 작가의 글을 읽다가 발각되면, 큰 봉변을 치를 위험이 있었다. 어머니는 선생에게 발각되면, 변명할 말을 가르쳐주었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인 같아 보이지만 사실 독일인의 필명입니다.’ 지혜로운 어머니 덕에 위기를 넘기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그의 일생에 큰 교훈을 주었다.
허클베리 핀은 1885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이 쓴 소설이다. 남북전쟁 직후 미국 사회, 특히 남부에서는 인종차별이 여전하였으며, 전통과 종교와 관습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았다. 헉(허클베리)은 종교와 도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삶을 옥좨는 상황에서 헉은 도망쳐 모험을 떠난다. 미시시피 강을 흘러가는 도중 짐이라는 흑인 노예 친구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난다. 당시 미국은 노예해방이 시행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시행되지 않아서 짐은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주로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그 당시 도망친 노예를 보호하거나 도와주면, 큰 죄가 되는 시대였다. 어려서부터 정직과 규칙과 도덕을 지키라고 교육받아온 헉은 고민한다. 마음속으로 도망친 노예 짐을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런 고민을 알 리 없는 짐은 자기와 함께 하는 헉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헉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내 평생 너를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고마워!” 짐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노를 잡은 헉의 손은 힘이 풀렸다. 갈등과 고민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였다. ‘신고할까? 말까?’ 신고하면 배신자가 되는 거고, 신고하지 않다가 걸리면 자기도 큰 벌을 받게 될 터이다. 마침내 짐을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편지를 보내려는 찰나 헉은 다시 고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짐이라는 친구를 배신하려 했다. 고발하려 했다. 밀고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만두겠다. 나는 교회에서 가르쳐준 것처럼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옥에 가도 좋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헉은 지옥에 갈 생각을 하고, 짐을 구하기로 하였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였다. 그는 이후 헉의 결심을 마음에 새기며 살기로 하였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삶을 살아가면서 이익이 되고 편한 길이 있는가 하면, 힘들고 어렵고 괴롭지만 의로운 길이 있다. 오에는 그럴 때면, 자신이 지옥으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편하고 쉬운 길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원이 약한 학생에게서 10엔을 갈취하는 것을 보았다. 약한 학생 편에 서서 그 사실을 공론화하면,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올지 뻔하였다. 그때 오에는 헉을 생각하였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그는 교장 선생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교장은 고자질쟁이라고 야단을 쳤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야구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1957년 ‘기묘한 일거리’를 써서 문단에 등단한 이후 23살 때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960년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하고 3년 후 아들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오에 히카리는 뇌 이상으로 지적 장애자였다. 태어났을 때 머리가 두 개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후두부에 커다란 혹이 달렸다. 당시에는 CT가 없어서 뇌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뇌 수술하여 탁구공만한 뼈 덩어리를 제거하였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정상이 될 가능성은 없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도 들었고, 자신에게 이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오래전 읽었던 헉의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지적 장애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칠 결심을 하였다. 그는 장애 아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하였다. 이를 계기로 ‘개인적인 체험’, ‘허공의 괴물 아구이’, ‘핀치 러너 조서’등 지적 장애아와 아버지의 관계를 모색하는 여러 작품을 집필하였다. 그는 장애 아들과의 삶을 통해서 반전과 평화, 민주주의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었다.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반대하고, 우익의 협박과 테러를 포함한 모든 폭력에 맞서며, 자위대 해외 파병 반대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94년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우연히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사연을 알게 되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이 주는 교훈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는 사실에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과연 삶의 좌우명이 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허클베리가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는 말을 하면서 도망 노예 짐을 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에 처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고통 가운데 죽으셨고, 음부에 내려가셨다.(벧전 3:18-20)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많은 논란이 있는 말씀이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44번은 음부에 내려가신 예수님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문 :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첨가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 : 내가 가장 큰 시험을 받을 때에 십자가 상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신 나의 주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은 지옥의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나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다.
칼빈 역시도 십자가를 육적 고통으로, 음부에 내려가는 체험을 영적 고통으로 이해하였다. 대속은 예수님의 육적 고통과 영적 고통이 합하여 완성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지옥의 고통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는 지옥의 고통은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고 천국의 안위와 복락만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편한지,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좋은지만 생각하고 넓은 길, 편한 길만 선택한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어떻게 하면 복 받을까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함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하여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너무나 부족한 데 있다. 헉과 오에 겐자부로가 결심하였던 모습을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우리 앞에 두 길이 있다.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최고다”는 길과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참고도서
1. 칼빈, '칼빈성경주석10 히브리서,베드로전후서, 골로새서,빌레몬서', (성서교재간행사:서울) 1980년
2. 오에 겐자부로, 후루이 요시키치, '오에 겐자부로의 말', 송태욱 옮김, (마음산책 : 서울) 2019년
3. 오에 겐자부로, '나의 문학과 지난 60년' 일본연구 7권 2007년,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