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Jul 29. 2015

영조와 사도세자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으니, 이제는 하라 하시는 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권력과 인간, 정병설 저, 문학동네, 209쪽)

뒤주에 갇히기 전 아들인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게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렇지만 형벌은 피할 수 없었다.

뒤주에 갇힌 지 만9일 만에 아들은 죽었다.

조선 시대 최고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다.

어찌하여 이런 참극이 벌어졌을까?

<출처 : 네이버 캐스트>

무수리 최 씨의 소생이었던 영조는 한마디로 자수성가형 아버지였다.

그는 권력쟁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유학에 정진하였다.

조선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왕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결국, 조선의 르네상스를 여는 왕이 되었다.

영조 어진, 영조 51세 때<출처:wikipedia.org>

아버지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아들은 만 2살 때부터 글자를 알았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하였다.

14살 어린 나이에 본격적인 제왕 수업에 들어갔다.

대리청정이 시작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아들은 아버지와 달랐다.

그는 학자형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술가적 기질이 강했다.

글 읽기보다는 시 짓기나 그림 그리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기보다는 밖에 나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버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도세자 영화 포스터에서

아버지의 눈 밖에 벗어나기 시작한 아들을 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엄하게 나무라고 야단쳤다.

신하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 일쑤였고, 아들의 옷매무새를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피하기 시작했고, 둘은 건널 수 없는 강으로 건너가고야 말았다.

아들은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 의관을 차려입기를 싫어하였다.

억지로 옷을 입히려는 내시를 죽였다.

사람을 한 번 죽이고 나니 그다음은 무서운 게 없어졌다.

그의 광증은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다.

부인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에게 맞아 실명할 뻔하였다.

어머니인 선희궁마저 아들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마침내 사단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영조에게 찾아가 자기 아들을 죽여달라고 청한다.

자칫 잘못하면 손자인 정조까지도 죽임을 당할 상황을 염려한 것이다.


아들을 죽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맘 편히 살 수 있을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어머니 선희궁은 아들의 삼년상이 끝나자 자신의 할일이 없는 양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영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역사는 그 마음까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찌 그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영조 20세때 모습 <출처:wikipedia.org>

이 비극은 끝나지 않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들에게 자신의 고집과 욕심을 강요하는 아버지들이 너무 많다.

친족 살해 뉴스를 볼 때마다 현대판 영조와 사도세자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무너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