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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11. 2019

묵시 종말론은 해방신학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8강

묵시 종말론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경험한 억압과 고통, 역사적 혼돈 속에서 생겨났다. 그들은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 어떻게 그 상황을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상황에서 회개를 촉구하던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다시 적용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구약 신앙을 재건하려고 유대교를 만들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사라진 제사제도를 회복하며 순수 신앙을 일으켜 보려고 무진 애를 썼기 때문이다. 핍박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성경적 사고방식보다는 헬라와 페르시아의 이원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을 해석하였다. 


본래 구약은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앞에 악이 설 자리는 없다. 하나님의 허락 하심이 없으면,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욥)을 건드릴 수도 없다. 그러나 이원론에서는 선을 대표하는 하나님과 악을 대표하는 사단이 대등한 상태로 싸움한다. 심지어 악이 더 강하여 선을 누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바트 어만(Bart D. Ehrman)에 따르면 “천국에서 쫓겨난 사탄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가치에 대적함으로써 땅 위를 어지럽히는 막강한 타락 천사이자 하나님에 필적하는 최대 적수로 다시 등장한 것은 유대 묵시종말론자들 때문이다. 유대교 및 기독교의 마귀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고대의 유대 묵시종말론자들이었다. 폭력이 악마를 만들어 냈다”(Carroll, 133)

원래 구약 성경에서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로서 타락한 존재이고, 하나님과 대등하게 싸울 수 없어서 언제나 뒤에서 거짓과 모략을 일삼는다. 그런 사단이 강력하여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제치고 사단이 역사를 주관하며 믿는 자(유대인)들을 핍박한다고 생각했다. 


묵시 종말론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패배주의의 산물이다. 핍박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묵시 종말론자의 절망에서 나온 잘못된 신학이다. 묵시적 이원론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은 악하고 믿는 자들이 가야 할 저 세상은 선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탈세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악한 세상은 멸망해야 하며 심판받아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만드신 후에 “좋다”를 외치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마이클 고먼은 묵시적 이원론을 윤리적 이원론과 시간적 이원론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Gorman,59). 윤리적 이원론은 빛과 어둠의 전쟁, 거룩과 속된 것의 전쟁, 선과 악의 전쟁이다. 마지막에 우주 대전쟁이 있는데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의 군대와 사단의 군대가 아마겟돈에서 최후 전쟁을 한다. 모든 사람은 이쪽 아니면 저쪽에 속해야 한다.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죽음뿐이다. 복음 전파, 빛과 소금의 삶, 구원은 설 자리가 없다. 오직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묵시 종말론자들이 외치는 마지막 우주 대전쟁은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끝을 맺는다. 자기들은 이 캄캄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할 일이 없으므로 기도하면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세상을 등지고 사해 동굴에서 종말을 기다리던 에센파처럼 많은 종말론자는 세상을 등지고 자기들만의 신비한 집단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1992년 다미 선교회가 그러했고, 천년 왕국을 소망하던 종말론자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두번째는 시간적 이원론이다. 그들은 이 시대와 오는 시대로 구분한다. 현세를 뜻하는 이 시대는 악과 불의와 억압과 핍박과 환란이 가득한 시대이다. 반면 오는 시대는 선과 정의와 평화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사탄과 악이 판을 치는 세상이므로 소망이 없다. 없어져야 할 세상에 미련을 둘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소망과 비전도 없다. 


희년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의미 없어졌다.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란 기대는 조금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오직 저곳일 뿐이다. 그래서 휴거라는 책을 보면 비행 조종사나 기관사가 갑자기 휴거되고 이 세상은 혼란과 아비규환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그들은 이 세상이 망하든 깨어지든, 환경 오염이 되든 아무 관심이 없다. 


이러한 묵시 종말론자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역사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묵시 종말론은 역사를 단절하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에만 마음을 두는 해방신학이요, 정치신학이며, 비상 시기 역사관이다(구덕관, 347). 


James Carroll, 예루살렘 광기(Jerusalem Jerusalem), 박경선 옮김, 서울 : 동녘, 2014년

Gorman Michael J.,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Reading Revelation Responsibility), 박규태 옮김, 서울 : 새물결플러스, 2017년

구덕관, 구약신학,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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