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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01. 2019

주 안에서 잠자는 자의 복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15강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13).


요한계시록의 두 번째 복은 ‘주 안에서 죽는 복’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초대 교회의 핍박을 생각하면, ‘순교’를 떠오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다 죽는 죽음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서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포함하는 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고전 15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란 표현을 합니다. 초대교회는 믿음을 지키며 죽는 사람은 순교이든, 순직이든, 자연사이든, 사고사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핍박에서 순교를 택하는 몇몇 사람만 복이 있다 하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순교와 같은 영웅적 죽음도 훌륭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모두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복이 있다고 주님이 선언하시며, 또한 성령님께서도 동의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성령님이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곱 교회에 권면하실 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반복하십니다. 그 외 성령님은 6번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의 성령님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음성 역할을 합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에게 인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이 증언하는 증인으로 만드십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은 고난과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교회를 위로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주의 날 성령에 사로잡혀 초대 교회 교인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게 됩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성령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씁니다. 

성령님은 주 안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성령님은 정말 위로자이십니다. 이 땅에서 수고하며 애쓴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십니다. 신앙생활 왜 똑바로 못하느냐 야단도 치지만 중심은 위로입니다. 똑바로 믿지 않으면 심판의 칼과 불이 떨어질 것이라고 협박하지 않습니다. 누가 들림 받고 누가 버림받을지 비교하면서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사로잡히도록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주 안에서 잠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누구는 휴거 당하여 천국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만 누구는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칠 년 대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을 세상의 논리로 해석한 잘못입니다. 성령님은 비교하여 경쟁시키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쉼과 위로를 줍니다. 


엔도 슈사쿠가 쓴 ‘침묵’이란 소설은 핍박받는 일본 그리스도인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의 중심인물은 키치지로와 로드리고입니다. 둘 다 체포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입니다. 키치지로는 체포될 때마다 배반하고 돌아서선 다시 회개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동료 신자까지 밀고하였습니다. 그런 키치지로를 로드리고 신부는 계속 야단을 칩니다. 그러나 로드리고 신부도 체포당하자 결국 배교를 합니다. 엔도 슈사쿠는 두 사람이 비록 신앙을 버렸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신앙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엔도 슈사쿠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면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뜻으로 ‘내가 버린 여자’라는 소설을 또 씁니다. 그는 남자 주인공 요시오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은 거기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만약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신은 그러한 흔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아닐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극심한 환난과 핍박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애환은 우리가 다 짐작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떤 모양으로든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그리스도인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성령님의 시선을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냉정하게 커트라인을 정해놓고 합격 불합격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쉼을 이야기하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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