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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04. 2019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

“배 일병 화장실 뒤로 와!”

한 상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일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 상병은 나의 선임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치다 온 한 상병은 똑똑하고 지혜로워 일처리를 잘하였다. 사무실에서는 꼭 필요한 사병으로 인정받았다. 화장실 뒤로 불러내는 일 외엔 크게 화를 내는 법도 없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나를 화장실 뒤로 불러내었다. 

“오늘 내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러니 너 좀 맞아야겠다. 

엎드려뻗쳐. 딱 10대만 때리겠다.”

영문도 모른 채 매를 맞아야 하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몽둥이로 힘껏 내리쳤다.

“윽.” 

딱 한대에 나는 쓰러졌다. 죽을 것 같았다. 

“똑바로 해”

열 대를 다 때리고 나서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담배를 한 대 물고선 부드럽게 말했다.

“배 일병 PX에 가서 초코파이와 바나나 우유 좀 사와라”

백 원을 받아 들고 PX로 달려가면서 나는 한 상병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보초 서러 나가면서 총으로 그를 쏴 죽일까? 아니면 그냥 유서를 쓰고 자살할까? 수도 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내가 얼마나 비겁하고 약하고 용기 없는지를 알았다.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시간만 나면 자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자고 나면 모든 악한 생각이 다 사라졌다. 매를 맞고 나면 언제나 잠을 잤다. 나는 잠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놀라운 방법을 배웠다. 목회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는 언제나 잠자는 것으로 풀었다. 이제 목회도 내려놓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하나도 없는데 역설적이게도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does not take into account a wrong suffered, NASB)’라고 하였다. ‘악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능동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하는 나쁜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당한 나쁜 것이다.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려는 나쁜 생각과 사랑은 연결할 고리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악한 것’은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악한 것은 내가 당한 상처, 천대, 외면, 멸시 등을 말한다. 


그렇다면, ‘생각하지 아니하며’는 무슨 뜻일까? 그건 목록을 작성하고 계산하고 기억한다는 뜻이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지?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지?

당신이 내게 보인 눈짓과 몸짓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어!”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다. 내가 언제 그랬지. 뇌를 풀가동 하여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도무지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 사람을 알려면 함께 여행해 보라는 말이 있다. 함께 살면 상대방의 모든 면을 다 알 수 있다. 어느 한 면이 좋아서, 사랑스러워서 결혼하여 함께 살면서 그(그녀)의 부족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이 아니어도 눈짓이나 몸짓이 가지는 의미를 다 알게 된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 사람이다. 부부 사이가 아니어도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믿었던 친구 사이에도 상처가 있다. 함께 신앙생활한 지 10년이 넘은 교인들 사이에도 상처가 있다.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도 상처가 있다. 


사랑은 그 상처의 목록을 작성하고 계산하고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허물과 범죄와 잘못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악한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시103:12)시고 기억하지 않으신다. 


오늘은 수면제를 먹고서라도 한 번 깊이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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