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가 채집하여 수록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형제간의 경쟁심리 때문에 겪는 어린이의 내적 경험을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Cinderella)는 ‘재를 뒤집어쓰다’는 뜻으로 항상 부엌 아궁이 앞에서 일하여 붙은 별명이다. 신데렐라는 의붓 언니들에게 구박과 천대를 받았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칭찬 한마디 못 듣고, 오히려 일만 점점 더 많아졌다. 이것은 형제간의 경쟁심리로 생긴 비참함 때문에 마음이 황폐해진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준다(Bettelheim, 383).
모욕과 폭력과 학대로 이어진 일상 속에서 신데렐라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녀의 소망은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로 동화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정말 신데렐라와 왕자는 행복했을까? 철학자 김용석은 재미난 상상을 한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의 ‘속편’은 어떻게 될까요. 이야기의 이치에 맞는 속편은 이렇게 전개되지 않을까요. 우선 왕자님의 삶은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신데렐라는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지만, 상처 주지 않을 줄은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집안에서 보고 듣고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은 남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 곧 교묘한 ‘폭력의 기술’ 들 뿐이었으니까요”(김용석, 30).
나는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사춘기 시절 나는 되지 않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허무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였기에 공부보다는 철학책 읽기를 더 좋아하였다. 자연히 아버지와 관계가 나빠졌고, 나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용납하지 않고 매질을 하셨다.
나의 온몸에는 상처가 났고, 상처 난 자리는 가시로 채웠다. 주변의 그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가시에 독을 채웠다. 말, 눈빛, 행동, 그 어느 것 하나 순한 구석이 없었다. 그때, 나에게 친구는 없었다.
목말채, 모두채라고 하는 두릅이 있다. 두릅은 독특한 향이 있어서 어린 순을 꺾어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찍어 먹으면 맛있다. 문제는 두릅나무에는 잔가시가 많다는 사실이다. ‘행복 숲 공동체’를 이끄는 김용규 씨는 가시나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하였다.
나무들의 가시는 대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막에 자라는 선인장은 수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잎이 가시로 바뀌었다. 가시는 또한 동물들이 뜯어먹지 못하도록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두릅처럼 연한 순은 맛있어서 사람이나 동물의 먹잇감이 된다. 아직 자라지 못했는데 자꾸만 뜯고 꺾으니까 나무는 가시를 내기 마련이다.
사람도 상처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가시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처 받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믿지 못하여서 가시를 만든다. 말이 부정적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해진다. 그건 그들만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 환경이 주는 고난, 세상이 주는 억압과 핍박이 그들을 가시가 돋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가 희망의 새싹을 틔울 때 꺽지 말아야 한다. 무슨 선한 행동이나 마음이나 눈빛을 조금이라도 비추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연하여서 쉽게 꺽이고, 부러지지만 오히려 격려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누군들 가시를 내고 싶겠는가? 그도 향기를 내고 싶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고, 맛있는 열매를 맺고 싶어 한다.
놀라운 사실은 가시나무 중에 때가 되면 스스로 가시를 떨어뜨리는 나무가 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는 가시를 버린다. 동물들에게 쉬이 꺾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줄기를 살찌웠을 때 그동안 키워온 가시를 떨어뜨린다. 자라면서 자신을 보호하던 그 가시에 더는 에너지와 양분을 주지 않으므로, 가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한다. 가시가 있던 자리는 말끔하고 단단한 껍질로 덮인다. “가시를 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의 에너지라면,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우는 것은 자기 성장의 에너지이다”(김용규, 47). 우리 사회나 가정이 가시를 만드는 환경이 아니라 가시를 떨어뜨리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가시가 있던 자리에 아름다운 향기로 넘쳐날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시를 썼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가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Bettelheim Bruno, ‘옛이야기의 매력 2’(The Uses of Enchantment), 김옥순, 주옥 옮김, 서울 : 시공사, 2005년
김용석, ‘사소한 것들의 구원’ E-book, 서울 : 천년의 상상, 2019년
김용규, ‘숲에게 길을 묻다’ E-book, 서울 : 비아북,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