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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27. 2019

인덱스 자료 정리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 전 김득룡 교수는 나를 교수실로 불렀다. 교수실은 사방으로 책장이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은퇴하실 노 교수의 교수실은 책의 향기로 가득하였다. 그때 당시 책장은 제일 밑에 서랍이 있었다.


김 교수는 제일 밑 서랍을 열었다. 거기는 독서카드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ㄱ,ㄴ,ㄷ … 순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카드 중 하나를 뽑아서 나에게 주었다. 그 카드에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경락아! 네가 교수를 하든지 목사를 하든지 성공하는 비결을 하나 가르쳐주마. 네가 만일 이것을 실천한다면 너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김 교수가 나에게 가르쳐 준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끈기 있게 평생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독서 카드 한 장뿐이었지만, 난 그 카드에 담긴 교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당장 문구점에서 독서카드 한 뭉치와 독서 카드를 넣을 상자를 샀다.


그때 내게 책이 몇백 권 있었던 듯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책 읽기에 맛을 들인 후 끊임없이 헌책방을 드나들면서 책을 모았다. 나는 김 교수가 가르쳐 준 대로 독서 카드에 인덱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어서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 했었다.


나의 책과 팸플릿 자료들을 다 정리했더니 독서카드 세 상자가 되었다. 아마 석 달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부터 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286 컴퓨터를 구매해서 dbase+를 독학하였다. 독서카드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위한 열망 때문이었다. 마침내 간단한 DB 프로그램을 짜고 독서카드를 다 입력하였을 때 뿌듯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컴퓨터는 안정적이지 못해서 한 달 동안 입력한 데이터가 한순간에 사라진 경험을 하였다.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믿었던 컴퓨터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안정적인 컴퓨터가 필요하였다. 나는 애플 컴퓨터를 구매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맥용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으로는 hypercard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이퍼 카드는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쉬웠으며 안정적이었다. 불행한 일은 2004년 3월 이후 맥은 하이퍼 카드 지원을 공식적으로 중단하였다.


암담하였다. 결국, 다시 윈도우로 돌아와 Access 프로그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윈도우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애플로 돌아와 현재는 Filemaker Pro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다. 여러 차례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옮겨 다니면서 자료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도 지난 40여 년간 꾸준히 자료를 정리해서 현재는 약 32만 건의 index를 가지고 있다.

목회하는 동안 인덱스는 설교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많은 설교자는 누군가 했음 직한 설교를 반복하여 설교한다. 보는 자료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기억에 의존해서 자기 자료를 사용하다 보니 실제 가지고 있는 자료를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득룡 교수가 가르쳐 준 인덱스 정리법은 가지고 있는 자료를 100% 활용하는 법이다. 나는 설교뿐만 아니라 강의나 글쓰기에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다.


만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인덱스 공부법을 익힌다면 영적,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나는 지금도 매일 평균 200개의 인덱스를 정리하면서 글을 읽고 공부하고 있다. 나의 글쓰기는 인덱스로 자료를 정리한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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