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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08. 2019

냉장고를 부탁해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이 방송은 보통 사람들이 음식재료를 사다가 냉장고에 재워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천덕 꾸리기 냉장고 재료를 유명 셰프들이 나와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 요리에 별 관심 없는 일반인의 냉장고는 그야말로 혼돈이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재료는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른다. 언제 정리하고 청소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에 찌든 때가 보인다. 그들은 기본 재료들의 상태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 그들의 냉동실에는 유통기한이 몇 년씩 지난 음식이 있고, 냉장고 안에는 썩어가는 음식까지 있다.


셰프는 자신이 요리할 재료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지식만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지 잘 알고 있다. 가장 신선할 때 요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한 재료라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들의 냉장고는 언제 열어도 재료의 상태를 알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안이 들여다보이는 밀폐용기에 정렬된 음식 재료들은 정갈하다. 선반 위 양념 통들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고, 선반 아래는 요리할 때 쓰일 갖가지 용기들이 제 위치에 있다. 셰프는 이 모든 것을 관리한다. 매일같이 정리하고, 청소하고, 살펴본다.


요리 초보인 나는 재료들의 정리 정돈만이 아니라, 요리 자체도 고민이다. 무쳐야 할지, 데쳐야 할지, 튀겨야 할지, 익혀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유투브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요리사는 재료의 성질과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는 불 온도와 세기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어떤 용기를 사용해야 할지, 어떻게 요리를 담아 보기 좋게 해야 할지 안다.


목사는 요리사와 같다. 나는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을 보면서 목사의 서재를 생각하였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자료 수집광이다. 어디 좋은 자료가 있다면 무조건 달라고 한다. 열심히 자료를 모으지만, 정리 정돈은 잘하지 못한다. 서점에 나가서 새로운 책이라 생각하고 사 오면 책장에 같은 책이 있을 때가 자주 있다. 가끔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감탄하며 줄을 긋다 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그런데 도무지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씀 사경회 강사의 말씀이 좋아 다음 해 그를 또 초청하는 경우가 있다. 교인들의 요청도 있고, 실제로 설교를 잘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했던 설교를 똑같이 하여 교인들이 황당해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사는 자신이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교인들은 생생하게 기억하였다. 자기 설교를 언제 어디서 설교하였는지, 그때 교인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전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은 결과이다.

목사가 서재에 쌓아둔 자료를 얼마나 잘 이용하고 있을까? 몇 퍼센트나 이용할까? 혹시나 한쪽 구석에서 먼지가 뿌옇게 쌓여가고 있지는 않은가? 목사에게 자료 정리와 정돈은 기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기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만큼은 정리 정돈을 잘해야 한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책상 위는 항상 어지럽혀 있다. 그러나 자료 정리만큼은 열심히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엑셀을 사용하여 자료를 정리한다.


1. 나의 설교 정리 - 그동안 했던 설교를 성경책 별로 정리하여 모아두고 정리한다. 언제 어디서 했는지, 청중의 반응은 어떤지 정리한다. 같은 교회에서 두 번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2. 예화 정리 - 설교에 사용하기 좋은 예화를 주제별로 정리한다. 예화 정리는 신선한 예화와 사용한 예화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물론 예화도 언제 어떤 설교에 사용하였는지 표시해둔다.


3. 자료 정리 - 책을 사면 제일 먼저 목차부터 정리한다. 팸플릿은 스캔하여 PDF로 만들고 특별한 폴더에 보관하여 정리한다. 자료 정리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주제와 성경, 장, 절 구분이다. 성경, 장, 절 구분은 설교를 위함이고 주제는 공부, 연구, 강의를 위한 부분이다. 자료는 수십만 건이 되다 보니 엑셀로 움직이기에 무리가 있어 DB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4. 노트 정리 - 내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대략 세 가지다. Evernote, Bears, Scrivener이다. 에버노트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좋은 자료를 모아놓는 곳으로 사용한다. 물론 에버노트 자료 역시 정리하여 DB에 넣어 놓는다. Bears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쓰는 노트이다. Bears의 장점은 태그를 붙여서 나중에 검색하여 쓰기 편리하다는 점이다. 이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신성호 전도사가 알려준 방법이다. 매우 유용한 프로그램이다. Scrivener는 내가 공부하는 모든 내용을 쓰고 정리하는 노트이다. 이 글도 스크리브너로 쓰고 있다. 컴퓨터 안의 워드 파일은 모두 스크리브너로 옮겨와 한 곳에서 사용한다. 스크리브너는 ‘독서 노트’ 와 ‘브런치(글쓰기)’ 스크리브너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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