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하다 보면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밥 먹고 합시다”
무슨 일이든지 다 밥 먹자고 하는 일이니 ‘밥’이 최고라는 소리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약간 찜찜하긴 하다. 밥 먹자는 핑계로 중요한 안건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행태를 볼 때 그러하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안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더욱 무겁다.
“법대로 합시다”
무슨 일을 처리하든지 정해놓은 법과 규칙을 따라 하자는 말이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가 법대로만 움직일까? 때로 대화와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다. 가끔 원리원칙만 내세우는 사람을 만나면, 고구마 백 개는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화와 타협 대신 갈등과 싸움과 분열만 있다.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
기독교는 대화와 타협을 뛰어넘어 은혜를 가르친다. 구약 성경(솔직히 구약만 아니고 신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을 읽다 보면 율법이 자주 나온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저주와 심판을 선언한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고 중한지를 알면 가슴까지 서늘해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법대로 합시다” 하면 과연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집행하실 진노의 심판을 피할 자가 있을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율법은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다. 율법엔 자비와 은혜가 자리할 곳이 없다. 율법은 인간이 저주받고 심판받을 자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율법을 성경 곳곳에 기록하였을까?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진노를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일까?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심판일까?
아니다. 구원이다. 율법을 심판의 도구로만 해석하면,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오해한 것이다. 율법은 구원의 도구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안내자다. 율법을 통해서 복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율법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한때 기독교 메시지의 상당 부분이 진노와 심판과 저주를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애원하며 회개하였다. 율법은 사람을 무릎 꿇게 하는 방법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게 무릎 꿇으면 정말 사람이 변할까? 칼을 들고 위협하여 무릎 꿇리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일까? 인간의 죄성은 뿌리가 깊고, 뱀처럼 간교하여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눈물 한 번 쏟고, 무릎 한 번 꿇어 변화될 사람은 없다.
그렇게 쉽게 변화될 것 같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사람의 변화는 쉽지 않다. 사랑, 은혜, 자비, 긍휼 그 모든 것을 동원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도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리다. 요즘 기독교가 그러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법대로 합시다”
그리고 인류 전체를 끝도 없는 무저갱 지옥 불구덩이로 다 던져 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패배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철저하게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하나님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사랑, 은혜, 자비, 평화, 긍휼, 등)으로 반드시 이 죄 많고 고집덩어리인 인간을 구원하신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신다.
나는 구약의 율법을 읽으면서 자꾸만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율법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자꾸 읽힌다. 포기해야 마땅한 인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접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향해서 “법대로 하면 너희 모두는 반드시 망할 것이로되 난 너희를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선언하신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승리가 무엇인지 천지 만물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건 영광스러운 승리라고 크게 노래할 그날까지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율법 뒷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사랑과 은혜를 읽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